살며 생각하며

사라진 고향

마음의행로 2009. 1. 12. 10:31

형님!  어머님 시골에 지금 계시지요?  형님한테 전화를 걸었다.

시골 집에 전화를 해도 어머님이 받지를 않으신다.

혹 아프신 것이 아닌가? 아니면 마을 회관으로 날마다 가시는 마실을 가신 것인가? 

시간 차이를 두고 몇번에 걸쳐 전화를 해도 답이 없어서 혹 광주로 올라 오신 것이 아닌가 싶어 형님에게 전화를 하였다.

광주에 오시면 형님댁이 아니면 여동생네 집에 계시게 된다.

 

아버님 돌아가시고 시골에서 홀로 계신 어머님이라서 여러 생각이 앞장 질러 나가기 마련이다.

아니다 어머님 시골에 계신다. 오전에 전화 할때 계셨었다. 그렇치요? 그래 무슨 일이 있냐? 예 오늘 시골 어머님한테 들리려고요.

내려가면 만나 뵐 수 있을 것이다. 네 예 알았습니다.

전화는 이렇게 끝이났다.

직장에서 같이 근무했던 후배와 전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나오게 되자 후배가 저도 시골에 오늘 오후에 내려 가는데,

함께 가면 될 것 같다고 하면서 같이 가면 좋겠습니다 한다.

나는 너무 고마웠다. 고속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데 돈도 들고 한참을 또 나가야 하는데 얼마나 편한 걸음이 될 수가 있게 되었는가?

고마워 고맙네 이렇게 하여 고향이 비슷한 후배 차를 타고 고향 길을 밟게 되었다.

 

차 안에서는 그동안 서로 근황과 과거 함께 근무했던 시절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옛날에도 지나가던 고속도로 이지만 후배 차를 타고 내려 가는 맛이란 참 독특하였다.

오후 늦게 출발도 했지만 광주에서 저녁을 먹고 가는 일정으로 되어 시골에는 늦은 밤에 도착하게 되었다.

후배 친구는 새로운 길에 접어드니 처음 가는 길이라면서 유심히 주위를 살피면서 나의 안내에 따라 조심스럽게 차를 몰았다.

나는 고향 동네에 얽힌 전설 같은 이야기며, 마을에서 일어낫던 과거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 주며 신이 났었다.

후배는 너무 재미 있다면서 나와 호흡을 잘 맞추며 고향에 도달하였다.

200여 m를 놔두고 이곳에서는 골목길이니 길 잃치 않게 돌아오던 길로 올라가서 사거리에서 우로 가는 길로 가면 된다고 고마운 마음과 함께 차를 되 돌려 보내게 되었다.

고마웠어 잘가! 선배님 다음에 다시 만나요 !! 우린 이렇게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골목길로 접어 들어서는데 벌써 딴나라 사람이 오는 것을 눈치챈 개가 멍멍 짖어 댄다.

그래 알았다 충성된 개야 허지만 이 몸도 옛날엔 이곳에서 너보다 빨리 터잡고 살았던 사람 아니냐 좀 조용히 해라 나 땜에 너의 집 주인 잠깨우겠다. 이놈아....

조금 걸으니 몸이 조금 움츠러 든다.

옛날 이곳은 상여 나갈때 물건을 간직하던 골목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변했지만 분위기는 남아 있다.

조금 돌아가면 초등학교 여동창네 집이 왼쪽으로 두집, 오른쪽으로 한집이 있다. 전에는 초가집으로 너무 정겨운 모습이었었는데 지금은 모두 기와집으로 바뀌어 있었다.

집집마다에서 사연이 떠 올라온다. 아 그랬었지 그래 그 때 그 누님은 부모님이 안계셔서 고모네 집에서 살다가 시집을 갔었는데 시집 갈때 그렇게도 많이 울었었지 꼬맹이인 내가 함께 눈물을 흘렸었으니까? 아 그 누나 잘 살았으면 좋겠다.

긴 골목으로 들어가는 집 입구에 들어 선다. 집 골목 입구에는 조그마한 가로등이 하나 켜 있다.

동산에 소나무들이 예전 처럼 거무스럼하게 동산을 지키고 있었다.

 

어머님 어머님 하고 불러본다. 왠지 조용하다. 벌써 잠이 드셨나 하고 문을 열어 보니 문이 걸려 있다.

근데 어머님 신발 한 컬레는 가지런히 토방 밑에 있다. 다시 불러 보았다. 어머님 어머님 저 왔어요. 그래도 조용하다.

아직 마실가셔서 돌아오시지 않았나? 염려반 기대반으로 200여m 떨어진 있는 마을회관으로 갔다.

마을 회관엔 이미 불이 꺼져 있었다. 모두들 돌아가시고 비어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더 확인 하기 위에 집으로 와서 어머님을 다시 불렀다. 어머님 저 왔어요 어머님..................

밤 11시 반이 넘은 시각이었다. 

이 큰 집에 어머님이 안 계시니 온갖 생각이 막 밀려 오게 되었다. 

갑자기 큰 집이 다 낡아버린 집으로 변하더니 지붕은 주저 앉고 쥐들이 천정을 마구 헤집고 돌아 다닌다.

천정에는 거미줄이 쳐져 있고 기둥은 삵았고 써가래는 두서개가 빠져 있다.

부억 쪽은 허물어져 있고 집은 허파처럼 구멍이 뚫렸다. 

들어 오던 골목길 흙 돌담장 마져 흔들려 무너질 것 같다. 매년 감을 주렁 주렁 달아내던 대봉은 고추 감나무로 변했다.

들어 올때 멀쩡했던 동산 소나무들의 운치는 흩어졌고 솔 바람 소리는 무슨 귀신 소리로 변하고 있었다.

마당 앞에 있는 꽃 밭은 쓰레기 밭으로 변했다.

 

모든 것들이 순간에 변하고 말았다. 

빈 고향집이 이제는 무서움으로 다가 온다.

그도 한 밤중이다. 마을마저 나 보고 이방인이라고 내칠 셈인가 보다.

이 크고 아름다웠던 마을이 황량하고 개 짖는 소리는 더 크게만 들려 온다. 아 돌아갈 수 밖에 없구나. 돌아서는 발을 헛디뎌 나는 넘어질뻔하였다.

광주로 가는 방법이 없다.

어디서 잘꼬 혼자 방에 들어가 잘까 생각을 하여 보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다.

뒤를 돌아 보면서 바쁘게 골목길을 벗어났다. 나는 외계인이 되어 종말을 맞은 지구의 어떤 마을을 찾아 왔었다.  

국민학교 2학년 때 눈이 4~50cm 쌓였던 그 정담 있던 길을 걸어 가면서도 춥기만 하다.

오른쪽에 있던 정미소는 다 낡아 양철 지붕이 날아 갈 것만 같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만 할 것 같은 바쁜 마음이 주변을 둘러 볼 생각을 막아 버렸다.

 

아저씨 읍까지 갈 수 있어요. 읍에라도 가서 잠을 자야 하겠기에 하나 있는 택시정류소 기사에게 물었다.

지금 가시게요? 예..    몸을 털고 기사가 나선다.

날씨는 춥고하여 여관에서 자야하나, 아니면 읍 근처에 싸우나에 가서  밤을 세워야 할지 하다가 돈이 적게 들어가는 편인 싸우나를 찾아달라고 했다.

월출산 밑에 싸우나가 있다고 해서 들어 갔는데 딱 한사람이 이불을 둘러 쓰고 누워있고 조명은 어슴츠레 하여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아닙니다 여관으로 갑시다. 되 돌아서 나와 여관을 찾아 들어가니 깨끗하니 괜찮다 싶다. 

서울에서 내려가 고향 집에가서 이런 소박을 맞고 나온 심정은 4만원이라는 여관비 낼때 더 져려 왔다.

 

아침에 광주로 전화를 한다. 여 동생네로 전화를 하니 어제 오후에 어머님을 모시고 광주로 올라 왔다고 한다.

오빠 그러면 어디서 주무셨어요?  응 읍에서 자고 지금 출발하려고 한다.

그러면 우리집으로 오시요 잉, 기다릴께요. 어제 밤에 연락했으면 차로 모셨을텐데 외진데서 혼자 주무셨어라우.

그래 알았다 올라 가마, 전화를 내려 놓고 광주행 고속버스를 탔다.

아침이 되니 시골 고향은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시골은 전과 같이 평화로웠다.  옛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다시 원래 모습으로 살아 났다. 마을도 그대로 동산의 소나무도 깨어 나 가벼운 몸을 털어 고운 소리를 내었다.  

광주행 고속버스 안은 따스웠다.

어제 밤 어머님 계시지 않는 고향은 이렇게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한 밤을 끝으로 되 살아났다.

'살며 생각하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박사님들  (0) 2009.01.27
여행 끝에서  (0) 2009.01.25
좋은 일이 있거든  (0) 2009.01.07
모래알 같은 삶을 살고 싶은 마음  (0) 2008.11.24
니뭣고?  (0) 2008.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