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글

혜화역에서

마음의행로 2024. 4. 13. 22:35

혜화역에서/곽 우 천

혜화역이었다
왜 기다리고 이 시간에 어둠을 파 놓고서 여기는,
누구의 뱃 속이라고 소리가 있어
불빛 있는 곳으로 뛰었다
고기가 입을 다물기 전에 살아야 했으니

늙지 않는 할머니를 또 본다
천당 가는 중간을 지키고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
꼭 지나가고 말지만, 그 패를

건너 골목이 개미집 쪼갠 길
페트라를 찾아갑니다
그곳에 백지장 한 분이, 달이 죽었다 다시 살아나면
누가 올 거라는 신앙으로 버티고 계시죠

어서 와
세상에 사람이 없어 아무도 텅 비어 있어
어느 날 씨름을 했어
혼자 놔두고 당신은 고독하지도 않으냐고
내가 다 죽이지 않았으니 죄짓지 않았으니
모센가처럼 당신의 땅에 못 가게 말라고

세상이 갑자기 튀어나와
당신은 꿈을 꾸고 있소 세상은 없는 거요
당신이 세상 아니란 말이오
나도 꿈을 꾸고 있소
그렇지만 꼭 세상은 있소 믿으시오

해와 달은 보았지만 땅을 모르고 살아왔어
이 땅이 해를 돌고 있다지
움직이지를 않는 걸 보면 꿈이 맞나 봐

걸려 있는 달력 마지막 장을
찢으면 땅이 해를 한 바퀴 도는 거라 매
언제 모아 보았나 세어를 보았나
한 묶음 90을

나는 그 백지 세상 안으로 들어갔다
눈, 코, 입, 귀가 다 엉겨 있는지
손발을 만져보고 얼굴을 맞대어 보고
하얀 숨 한 줌 쥐고 나온다
세상이 온통 비어 있다 주먹 안처럼 텅
길을 잃고 꿈꾸는 중인지
혜화역을 빙빙 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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