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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언어

심부를 갔다 그냥 돌아와 답을 하지 않은 채 얼굴만 만지는 빈방처럼 먼저 퇴직한 친구가 좀 보자고 초봄 찻잎 얼굴을 가지고 왔다 간을 토끼의 주머니에 넣어 살고 있다고 했던 말하는 그는 이 세상에 없어 보이는 사람 같았다 어느 경전도 따라잡지 못한 번짐 없는 입, 짐이라고는 하나도 없어보이는 어깨 색이 없는 말에는 끌어당기는 힘이 방안 가득했다 부탁도 청도 아닌 과거들이 나열 앞에 따습게들 모여들었고 그가 남기고 간 공간은 생의 시작과 끝 어디쯤이라기보다는 갚을 수 없는 빈 자유로움이었을까 서로 잡아당기는 이해는 같은 것이라도 느낌의 차가 한이 없다고, 바람이 일어서고 가라앉음도, 밀려오고 쓸려가는 바닷물도 깊음이 물길따라 다르다고 달빛 같은 말을 듣고 있었다 상처의 이쪽과 저쪽 사이를 쉽게 넘을 수 있..

시 글 2024.01.31

그러고

지금이 황혼인가요 나는 나이를 말할 줄 모릅니다 계단이 있어 통하질 않으니까요 똑같은 바람이 불어와도 똑같은 물결이 밀쳐도 왜 서먹하지요 내가 높은가 봐요 아니에요 뱃속이 비어서예요 2년이 넘었거든요 그때마다 계단을 올랐어요 우린 언제 통할까요 바람을 넣어보고 싶어요 바다를 삼키고 싶어요 그리고 전화를 할 겁니다 이젠 상관없어요 바람도 바다도 왜 그걸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다 나를 빼면 서운하거든요 내가 가겠어요 당신에게로

시 글 2024.01.26

소프라노의 눈치

입술을 오므리는 건 공기를 끌어내기 위한 혀의 작전 바람은 파란 파동이 되어 담을 턴다 노래는 주변 소리들을 삭힌 특별한 친서 애써 닿으려는 팔은 담장 건너 긴 머리 노래에 약한가 봐 그녀는 파랑에 꼬리표를 달고선 묻고 답한다 추파일까, 간절일까 늦지 않는 끌림은 답이 먼저였다 검정 머리 찰랑 기름기 흐른 눈망울 진달래 물이 도는 낯빛 콧김만 왜 탱탱한지 오늘따라 우글대는 속내를 깨물게 하고 있다 꺼내야 할 입술이 숨어버릴 때쯤 눈치는 눈이었다 날 때부터 지닌 촉 어서 말해 지금이야 강을 건너는 소프라노의 촉촉한 윤기 엉겼던 걸음 사뿐, 흔들바람은 산들 어깨는 푸드덕, 키가 날고 있다 어느 가수의 '휘파람을 부세요'를 들은 적이 있다 수천의 자양분이 든 우림의 숲은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처럼 쿵쾅 두근 ..

시 글 2024.01.12

말랑말랑

가끔 거울을 유심히 본다 늙어감을 자로 재어보는 나를 보는 것이었다 판단이 잘 가지 않을뿐더러 젊다고 여기고 있다 확인이라도 하는 듯 지하철 층층대를 가벼운 듯 뛰어올랐다 거봐 젊잖아 내가 내게 답을 하고 있었다 사진을 좋아했던 나 이어서 변천사를 본다 그제야 나를 보게 된다, 현실을 그래도 아직 쓸만하구나 하며 돌아본다 어느 때부터인가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질 않았다 그러고 나서 살이 엄청 빠졌다 몸이 가벼워지니 조깅이 가능해졌다 300m도 헉헉댔던 시간이 이제 3km를 뛰고 있다 너무 상쾌했다 한편 얼굴은 쭈그러졌다 아프냐고 어디 물어들 본다 부드럽지 않다고 유연하지 않다고, 깔깔해졌다고 의사는 말한다 무조건 60kg까지 올리세요 그리고 유지하세요 아프시면 다시 일어서기가 힘드십니다 모임이 많았..

살며 생각하며 2024.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