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 5

그냥 사는 거라고요

말 너무 쉽네요 공부도 쉽고 노래도 쉽고 지나기가 쉽고 좀 어렵네요 사람 알아가기가 어렵고 일한 대가 받기가 어렵고 먹여 살리기가 어렵고 나를 찾기가 어렵고 너무 어렵네요 남을 이해하고 나를 낮추고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 다 내 잘못이라는 것 세상에 더 어려운 게 있을까요 난 있어 보입니다 한 우주를 품고 기르고 끝까지 사랑한다는 것 입이 아니라는 것 손이요 발이요 머리끝이요 피였고 애간장이었고 참음이었고 견딤이었고 그래 그래였고 오냐오냐였고 눈물 한 방울이었다는 것 다 품으신 한 줌 어머니

시 글 2023.07.19

오란비 걷히던 날

언젠가 며느리 불러 낸 뒷동산 바위의 기약이 있었지 보리 베어낸 자리에 모를 내는 이모작 궁핍 시절은 발등에 오줌 싼다는 숨 가쁜 마을이었다 삽 한 자루 들로 나가 마른땅 한 삽 두 삽 떠 펼친 논 마지기 중천의 해는 한해를 그리 저물어갔었다 배고픔은 해도 잊을 수 있었던 걸까 올해는 몰라도 내년에는 부쳐 먹을 수 있어야 그 당겨진 혁띠를 헤아렸던 아이 아버지 기일 15 년째 해 아내로 등기해 준 마지기 논 못내 매매계약서에 도장 올린 꿀꿀함 짓던 땅 마지막, 붉은 인주가 아버지 되어 마을을 떠납니다 무릎을 친 감사헌금 언어가 서로를 위로 할 때 오란비 걷힌 후 가슴털이 그리 뽀송하였던 뒷동산 뉘인 바위 발걸음 우리를 알아보시던 날

시 글 2023.07.15

발바닥 가운데가 왜 오목한 지 (한강 생태공원 한 바퀴)

발바닥 가운데가 왜 오목한 지 (한강 생태공원 한 바퀴) 비 그친 뒤 땅은 빨랫줄에 방금 연 옷처럼 여름을 물고 땅의 근육과 핏줄을 끌어 쥐고 있다 바닥을 딛고 선 맨발 하얀 개망초 열 송이 발끝에 피워내고 밟히지 않으려면 길을 내 주거라 숲은 하늘 닫은 오솔길에 구불구불 골목길 터 주었네 가끔은 물웅덩이 세족탕을 파 놓고 조심을 파종한다 심심했던 지 길 동생 밴 어머니 배처럼 빙 돌아서 나오게 하고 여섯 달만큼 길을 늘여놨다 까치밥 된다는 찔레꽃 씨앗 아직은 푸른, 겨울 색을 고르는 중 작년에 보았던 고라니 오줌발 옆 노루오줌꽃이 대신 피어 하늘에 선물한다 살빛 브로치를 오솔길 가로지르는 작은 뱁새들 한 방향 가는 길에도 여러 길이 있다고 이쪽저쪽 파고드는 쪽숲 어둠은 소리를 집어먹고 그림자를 훔쳐먹고..

시 글 2023.07.11

느티나무 교실

알림 선생님이 저 새는 무슨 새에요 묻습니다 으응 두루미 아니에요 학생이 답합니다 그래요 두루미 성내천 물이 발목을 잡고 긴 고개입에 물고기를 던져주어 사는 두루미 이야기가 나온다 생각 선생님은 사랑 마크가 뚫린 플라스틱 책받침을 가지고 다니는 학생들에게 모과나무껍질에 책받침을 대어 주고 뭐 같아요라고 묻는다 얼룩송아지 같아요 기린 같아요 그럼은요 얼룩송아지 기린 좋아요 질경이는 질경이 밤송이는 밤송이 끝에 찔리는 가시가 달린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이라는 두 글자가 추가된 행운의 네 잎 클로버로 명명되었다 어둠을 들이쉬기 시작할 때 숲은 손전등을 켠다 나방들 숲 사이에서 별이 되고 달이 되고 반딧불이가 되고 알림 선생님은 알림 선생님이 되고 생각 선생님은 꿈 선생님이 된 밤 사이 우주가 떠다닌 푸른 숲꿈이..

시 글 2023.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