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 6

한강에 발 담구고

둘레길인지 나들길인지 길을 따라가다 보면 알몸 한강이 철철이다 이 강물 마신 지 50여 년 더위를 마시는 물길, 삼키는 숲길은 이십 리 길 맨발의 청춘 필름 한 통 길이 여섯 친구 불러 낸 통화는 둥근 지붕에 간 친구 이별 이야기 그림자를 출장 보내고 나니 섭섭함은 외출을 하고 마냥 좋아하는 발가락 언젠가 제주 출장길 따라나선 옆지기 한라산 오르던 강아지 발보다 날렵하다 평생 가족 지켜 주던 그녀도 그림자 속도가 느려지고 가끔 어둠 파는 이야기를 하곤 동굴 안으로 들어간다 발바닥 열기는 내일까지 숨통 열 개가 부채질할 거란다 한강에 담근 발이 숭어처럼 뛸 때 태양을 토해 낸 저녁 보트 하나 물길을 접는다

카테고리 없음 2023.06.28

바꿔치기 한나절

걸망 매고 판 벌린 한나절로 가는 길 동네 젊은 친구 둘 담배 한 대 물고서 야 사는 것이 친구를 만나는 것인 것 같아 그럼 나는 뭐지 담배 맛만큼 쓰다가도 모를 안정감에 속고 있다는 듯이 비벼 끄고 오후에 비는 쏟아 붓겠단다 먹고 마셔야 산다는 한의학 박사 배 넷 바나나 3 단 당근 두 봉지 브로콜리 두 덩이 비트 한 바구니를 만나러 나절 시장은 살리려는 것들을 바꿔 주고 있다 구름은 살려 비로 바꿔치기 하고 나는 살리려 주스를 갈고 살아 있음을 글로 바꾸고 있구나 바꿔치기 한 나절이다

시 글 2023.06.23

복권 타는 날

이발소가 나를 찾는다 옆머리 더울 때는 바짝 올려 깍아 주겠다 한다 스포츠머리는 아니지만 올만에 젊은 오빠가 되었다 바나나 주스 두 컵이 마중 나왔다 딸하고 손자를 만나려면 달콤한 남쪽이야기가 필요하다고 길고 둥근 즐거운 날 복권 타는 날 메시지가 귀로 눈으로 가슴으로 들어온다 이릴 땐 좋은 소식이다 감각 기관 서너 개를 동시에 울린다는 건 슬픔보다 기쁠 때이다 XX은행 컴퓨터가 전수 조사를 끝낸 후 오늘 오면 이자를 더 주겠다고 제시 한 금리가 작년 3 배인데도 배가 고팠다 간사한 속내 숨기고 기꺼이 챙기고 왔다 나를 찾는 사물들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살만한 오늘처럼 내일이 되면 또 오늘 남은 시간 이렇게 무작위 하게 끌어다 붙인 문장이 '속없는 녀석'하며 재미있어한다

살며 생각하며 2023.06.22

채우거나 메꾸거나

그만큼 한 줄기의 물 폭포의 이음이라도 되는 듯 끊임없이 내놓고 있다 나무의 뿌리 사이 돌멩이 비켜선 사이를 지나고 풀뿌리에 머금을 한 방울 물 땅 속 습기를 뽑아내 가지에 모으고 줄기로 모아 수도관 같은 약수로 내리는 땅 속 물줄기를 헤아려 본다 나무의자를 찾은 목 축이러 나온 모기 대 여섯 마리가 덤벼든다 날렵하게 두 마리를 잡아 내었더니 방금 약수 떠낸 빈자리를 메우듯 두 마리 어디서 왔는지 도로 대 여섯 마리로 불어났다 누구에게나 공간이란 생명의 영역인가 보다 이놈들은 빨간 자기 뱃속까지 채우러 온 녀석들이다 물은 자꾸만 아래로 내려가 채우는 걸 보면 입으로 내놓는 트림과 항문을 뚫고 나온 방귀는 우주를 채우는 방식이 다르다 약수터에도 빈 곳이 있어 까치 까마귀 알아차리고 울음 토해 숲 빈 곳을 ..

살며 생각하며 2023.06.18

사라진 것들

어느 날 큰 불덩이가 태양계를 모두 삼켰다 그 안의 생명체나 무생명체는 모두 불에 녹아 없어졌다 점보다 작은 빈 공간 하나 우주에 생겼다 원하던 이데아는 어디로 갔을까 땅을 파던 손발은 어디로 갔을까 신은 어둠이 사라진 것처럼 사라졌다 이 우주는 전혀 관심 없었고 그러기에 어떤 미동도 없었다 인간과 자연과 신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무슨 의미들이 살고 있었던 걸까 우주는 무슨 의미들로 이루어진 걸까 사라질 것들인가

시 글 2023.06.14

경계를 안테나 하고 있다

하루치 어둠을 몰고 온 끄트머리쯤 초병으로 섰던 현관문 딩동댕딩동댕 되돌아온 오늘은 히스테리 혼방으로 들어가고 끌린 발자국 소리에 하루를 풀어 해석한다 오늘은 어땠습니까 찬바람 쌩 물고 들어가는 늦 침대 하나 벌써 일주일째다 그날의 마침표에는 묻혀들인 바깥 색깔을 감별하고 발바닥 미끌린 중력을 재어보는 일 색깔과 무게가 주는 분별은 분별을 낳고 분별에 지는 밤 침대는 건망증 수면 중이다 찟뿟한 아침과 서류 젖은 저녁나절 사이 풍진계의 수직 파장과 자전의 수평 기록들 계급의 기색을 살폈을 속 알아 채기/ 그림자 지지 않으려는 들고 나온 커피나뭇잎들의 수다/ 흑그라스 뒤 변색된 가면/ 을 감식하기 바쁜 안테나 하루가 던지는 질문, 왜 살지요 양파껍질 일과들 기록이 되고 수축되는 하루 가장 먼 인사 안녕히 주..

카테고리 없음 2023.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