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글

*이름 빼앗긴 꽃

마음의행로 2022. 11. 2. 18:34

휘발시킨 이름 아이디를 전설처럼  붙이는 마을
너는 '억새'라는 이름을 지어 받았지

벌 나비 전혀 세 들어 살지 않는
꽃에게는 이름을 지워갔다하네
혹 신명이 있었던 것일까

마을은 해였다 달이었고 별이었든지
꽃은 꽃은 다 꽃밭으로 키워내고
바람을 좋아하는 것들은
집 밖으로 쫓겨나
해 달 별 가는 길을 들여다보는 하늘 바래기이었습니다

족두리 올리는 일은,
부모 이름 지우고 마을서 얻은 이름 지켜가는,
너무 낯설어
'마동 댁'은 집이자 이름으로 평생이 되어버려서

암컷은 어둠이 커나가면 강가로 나와
하늘이 스러가는 길과 마을 샛길을 바꾸어 보곤 했습니다

해는 무겁고
흔들리고 싶은 여인이 찾아와
같은 풍경이 되어 알듯 모를듯한 말을 주곤

너의 몸에서는
배고픈 벼 이삭 냄새가 콤바인 날개에 갈리어 뿜어 나왔습니다

멀리 시집보낸 막내딸 같은 행성
살아 있어도 이름이 빼앗긴 채
쪽달 같은 서자의 푸르스럼이 되었고

꽃 이름표 한 번 달지 못한 억새는
먼지떨이 목을 빼고 마을 들녘에서 바람을 끌어 모으고 살고

수그렸다 일어서는 억새꽃 하양 깃털 아이들을 거느리고
가을을 바짝 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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