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글

색은 더 고와졌다

마음의행로 2022. 5. 17. 23:49

ㅡㅡㅡ
마을을 내려다 보던 달
가지에 걸린 바람 한 점 잡아 놓고선
동자로 세월이 아닌 색과 결을 찾고 있네요

봄 가뭄을 타던 내장에 있는 습들은
바스러진 표피를 지키려 자신을 짜 내고

연장시켜 준다는 생명
가죽만 남긴 금식은 여태껏
바짝 붙인 바닥을 셈하고 있습니다

깨지지 않는 그림자와
달의 뒷면에서 긁어낸 문신 조각
조명이 물어다 준
생인 손

수 천만년 전 지층에 눌린 흔적은
비 폭력 저항처럼 순하고 깊은
간디의 얼굴입니다

날개 세운 돛은 집열판 회로를 꺼내어
바람으로 채우고 색을 입혀
벌판을 핥고 온 시베리아처럼 섬섬하네요

손금을 좀 보는 점술가가
조상을 물어보고
생명선은 거북처럼 길고 질겨
이 생보다 더 긴 느린 걸음이랍니다

오래된 빛은 아주 느렸고
색은 더 고와졌더라 나이 들어

학자들은 다윈의 진화론에 불을 켰고
종교가 들은 창조론으로 맞서는데
정작 너는 너무 침착한 무(無)이란다

너를 닮은 내 갈비뼈와 살
색과 결을 녹여 고운 그림 화석으로
태어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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