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씨가 본사에서 승진하여 연구소로 발령을 받은
것은 IMF 두 달 전이었다
연구소는 생소한 직장 분위를 가지고 있었다
연구만 하는 조직과 이를 관리하는 조직이었다
그는 연구소 두 개 분야를 모아 관리하는
책임자가 된 셈이었다
본사에서 그의 기획력은 한 산맥을 이루었다
반 년 이상을 근무하면서 고민이 많았다
새로운 분야에서 프로젝트를 찾기 위해
전 분야의 연구 조직원을 만나 일을 파악하는데
많은 시간은 보냈다
어느날 아침 회의 시간 이었다
기획실 아침 회의는 차례로 돌아가며
업무 진척 사항을 보고하는 시간이 주였다
K씨에게 질의가 떨어졌다
요즘 하는 일이 무엇인지....
성에 차지 않음을 지적한 색갈이 농후한
상사의 말은 묘한 상처를 만들어 내었다
순간 회의는 싸늘한 분위기가 되었지만
답보다는 그의 관리 중심 일을 담담히 말했다
IMF가 터지고 6개월이 지나자
모든 조직에 감축이라는 특명이 떨어졌다
K씨는 1년 조금지나 다시 본사로 발령을 받고 올라갔다
그의 상사도 본사 이웃 부서장으로 올기게 되었다
S대를 나오신 전무는 결제에 무척
까다로워 한 건 처리에 하루 이상을 보내기는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승인이 떨어지면
광땡을 잡는 기분이었다
전무님 시간이 정말 없습니다
회사가 문을 닫을 정도는 아니지요?
읍소에 응답은 말문을 닫게했다
K씨는 그 와중에도 결제를 순탄하게 잘 받아 내어
주변의 부러움을 샀다
그의 보고서는 카피되어 참고서가 되기도 했다
전무실 입구에는 결제를 얻기 위한 행렬이 줄을섰다
모두 고통의 시간들이었다
고함과 함께 책상 치는 소리가 났다
결제판을 들고 맥이 빠져 흔들리며 나오는
옛 상사를 그는 보았다
결제는 아래 직원들이 상사를 평가하는 주요
항목으로 자리 잡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퇴직을 하고 나서 K씨를 괴롭히는 일이
조용히 끈질기게 따라 다녔다
회사 일과 사람이 밤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신감 넘치던 자신은 지워지고 무능한 간부로의
모습은 그를 진저리 치게 했다
꿈은 가끔 그를 엄습하고 잠자리를 어지렵혔다
벌써 20년 가까이 까지 이어져왔다
선배님 이번에 연구소 기획실로 발령 받았습니다
선배님의 좋은 아이디어를 구하고 싶습니다
대학 후배의 전화였다
한 달쯤 지나서 후배 생각이 났다
직원이었던 후배가 성장해 자신의 옛 자리에
앉게 된 상황을 떠올렸다
K씨가 연구소를 떠날 때는 새로운 분야
프로젝트 구상을 거의 완성해 놓은 상태였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봉투에 잠이 깊게 든
아이디어를 꺼내기로 했다
20년이 지나도록 연구소에서 찾아 내지 못한
프로젝트는
이렇게 나타나는가 보다 라고 가벼운 흥분이
돌았다
한 6개월이 지나서 후배에게서 K씨는 전화를
받았다
선배님 그 프로젝트 성공적으로 채택이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프로젝트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현장에도 가 보고 PERT/CPM에 의한
모든 자원인 인력과 기슬과 예산과 일정을
짜 맞추는데 밤을 세웠다
벌과 나비는 꽃 송이 속을 부지런히 들락거렸다
프로젝트는 연구소 하늘을 연처럼 높이 날았다
본사의 전무는 K씨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긴 잠에서 깨어난 K씨의 온 몸에는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봄비가 촉촉히 내려 대지가 차분히 가라 앉는
땅에 초록빛 싹이 뾰쪽히 돋아났다
가위는 우주 밖으로 날아 날아가 버리고
다시는 태양계로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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