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글

농부의 아내

마음의행로 2020. 1. 20. 11:31

 

하늘이 문을 여는 새벽

닭장의 숫닭이 하루를 부르는 초혼

꼬오꼬오오

쳐든 고개가 땅까지 내려 온다

달구똥 돼지똥 소똥이 섞인 거름은

바지게에 한 짐 가득하다

초 봄의 밭은 쟁기질 밭갈이에

소 입김이 허헉 허옇다

이 정도 퇴비면 올 농사에는 족할거야

뒤 따르던 어머니는 돌맹를 주어 내고

씨앗 한 줌 잡은 손이 나비되어 들을 가른다

여름 내내 풀과 전쟁을 치르기를 서너 번

머리까지 올라오는 열기 곡식은 즐기고 있다

가믐에 축 쳐진 잎이 개울을 판 웅덩이에서

밤새 퍼 나른 두레박 물 덕에 아침이 싱싱하다

땀 숭글한 얼굴로 머언 하늘 보며

잠시 처녀적 고향집에 다녀갔다 온다

어머니....

쉴 틈 주지 않는 내림 농사에 포기 각서 한 숨소리

어느 고랑은 거름이 약하고

어느 고랑은 벌레가 달겨 붙었다

한 손 펌프질, 한 손은 분무기로 뿌린 농약

나눠먹지 말자 선언하니

벌레가 땅에 뚝 떨어지고 만다

그 좋던 봄 바람이 심술이 났나

태풍되어 갈퀴처럼 잎 가지를 긁어 놓고 간다

애고 애고

내 새끼야 새끼줄 한 번 더 단단히 할걸

니 죽으면 나 죽는다

세월이 약이라 하더니

그럭저럭 농사가 어우러졌다

낫 끝에 베인 몸둥이 깍지 묶어 단이 되었다

소 달구지에 높이 싣고 훵한 들판을 둘러본다

이 길 뿐인 생의 길

자식 기르고 먹고 살아야 하는 길

거둬들인 결실의 기쁨 안에는

도와 주신 해와 달과 별

바람과 구름과 비, 내 이웃들

고생한 내 손과 발

농부는 마지막 4장 메마른 겨울에 들어서서

지나온 날 쭈욱 돌아본다

저녁 들판에 밀레의 감사 기도가 보인다

한 세상 살아가게 하여 주심에

고맙습니다

저녁 노을이 유난히도 붉다

'시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위  (0) 2020.03.05
아버지의 바다  (0) 2020.01.26
나는 가끔 나의 불을 끈다  (0) 2019.09.03
눈섭 달  (0) 2019.08.11
잠실 나루역을 지나가면  (0) 2019.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