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문을 여는 새벽
닭장의 숫닭이 하루를 부르는 초혼
꼬오꼬오오
쳐든 고개가 땅까지 내려 온다
달구똥 돼지똥 소똥이 섞인 거름은
바지게에 한 짐 가득하다
초 봄의 밭은 쟁기질 밭갈이에
소 입김이 허헉 허옇다
이 정도 퇴비면 올 농사에는 족할거야
뒤 따르던 어머니는 돌맹를 주어 내고
씨앗 한 줌 잡은 손이 나비되어 들을 가른다
여름 내내 풀과 전쟁을 치르기를 서너 번
머리까지 올라오는 열기 곡식은 즐기고 있다
가믐에 축 쳐진 잎이 개울을 판 웅덩이에서
밤새 퍼 나른 두레박 물 덕에 아침이 싱싱하다
땀 숭글한 얼굴로 머언 하늘 보며
잠시 처녀적 고향집에 다녀갔다 온다
어머니....
쉴 틈 주지 않는 내림 농사에 포기 각서 한 숨소리
어느 고랑은 거름이 약하고
어느 고랑은 벌레가 달겨 붙었다
한 손 펌프질, 한 손은 분무기로 뿌린 농약
나눠먹지 말자 선언하니
벌레가 땅에 뚝 떨어지고 만다
그 좋던 봄 바람이 심술이 났나
태풍되어 갈퀴처럼 잎 가지를 긁어 놓고 간다
애고 애고
내 새끼야 새끼줄 한 번 더 단단히 할걸
니 죽으면 나 죽는다
세월이 약이라 하더니
그럭저럭 농사가 어우러졌다
낫 끝에 베인 몸둥이 깍지 묶어 단이 되었다
소 달구지에 높이 싣고 훵한 들판을 둘러본다
이 길 뿐인 생의 길
자식 기르고 먹고 살아야 하는 길
거둬들인 결실의 기쁨 안에는
도와 주신 해와 달과 별
바람과 구름과 비, 내 이웃들
고생한 내 손과 발
농부는 마지막 4장 메마른 겨울에 들어서서
지나온 날 쭈욱 돌아본다
저녁 들판에 밀레의 감사 기도가 보인다
한 세상 살아가게 하여 주심에
고맙습니다
저녁 노을이 유난히도 붉다
'시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위 (0) | 2020.03.05 |
---|---|
아버지의 바다 (0) | 2020.01.26 |
나는 가끔 나의 불을 끈다 (0) | 2019.09.03 |
눈섭 달 (0) | 2019.08.11 |
잠실 나루역을 지나가면 (0) | 2019.0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