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종지기 권사 할머님

마음의행로 2015. 9. 14. 13:15

저 종은 누가 칠까

큰 마을 새벽을 알리고

대나무 소나무 감나무 탱자나무 숲에

종울림 있게 하고

첫 닭 울음 보다 먼저 깨어

종은 기도로 자기 몸을 33번 떨었다

권사 할머님이시지

시계가 없던 시절에

시계로 남아 주셨어

기도로 남아 주셨고

찬송으로 세워 주셨지

잠자던 암소가 핑경을 흔들었고

잠자던 개는 눈을 떴다 감았지

참새란 놈은 끔쩍도 않고

산비둘기는 새벽에 똥을 소나무 아래로 싸고,

진즉 잠에서 깨어나신 할아버지

담배대 더듬거려 찾고 계시네

새벽을 권사 할머님이 깨우시는지

종소리가 깨우는지

어느듯 종소리는 대나무 숲으로 숨어들고

다시 마을은 소요하여 진다

어느 집에선 새벽 세숫물에 얼굴 씻고

머리에 물 묻혀 머리 빗고

가방찾아 성경책 넣고 조용히 사립문을 나선다

이제는 이웃집 개들도 할머니 새벽 기도드리려

가시는 발소리를 알고 저 할머니는 무슨 기도를

드리실까? 생각하며 눈 두 번 껌벅거리다가

다시 잠이 든다

기다란 골목 골목 흙돌담장 길을 한참 지나고

구부정한 몸 이끌고 당산 나무 언덕 뒤에,

서 있는 조그마한 양철지붕 교회로 들어 가실거다

밤새 일어나서 종치려고 설잠 주무신

권사님을 만나서 손잡고 웃음으로 소리없이

인사를 나누시고 교회 안으로 들어 가신다

입구 옆에 있는 신발장에 고무신 올려 놓고

새벽 기도를 위한 방석 하나를 꺼내어

강단 바로 앞에 놓고 앉아서

오래오래 몸을 앞으로 뒤로 숙였다 펴셨다

하시면서 기도를 하실겁니다

먼저 하늘나라가신 할범께 문안 하고

자식 손자 잘되게 빌고

마지막 남은 힘으로

이 몸 이정도만 오래 건강 지켜 주시라고

빌고서는

교회를 나서서 집으로 돌아 오실겁니다

뒤에서 잘가시라고 손을 흔드시는 권사님

새벽 4시를 온 동네에 시계처럼 정확히 알리고

아직 일어날 시간 더 남있으니 잠 더들 자라고

알려 주십니다

오늘도 고되지만

마을에 평안을 주시라고

길영이네 발 다친것 낫게 하여 주시고

송희네 할아버지 갓난 송아지 잘 자라게 빌고

들판 곡식 상하지 않게 잘 익어서

풍년들게 하여 주시라고

올해는 보릿고개 없이 지나가게 하여

주시라고

이 마을에 아픔도 없고 걱정도 적은

살기좋은 마을 되게 하여 주시라고

기도로 찬송으로 둘러보고 둘러보시는

권사님의 기도의 종소리

자기 몸무게만한 종에 달린 도르레에

달려 있는 줄을 당기십니다

땡그랑 땡 땡그랑 땡 땡그랑 땡......

일 년 365일 하루도 걸림 없이

홀로 고독하게, 끝내 자기를 이겨내시고

사명을 다 하신

종지기 권사 할머님이

오늘 문득 생각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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