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변 자전거 대여소에서 나는 너를 빌렸지
이 모양 저 모양, 크기도 보고, 떼깔도 보고, 맵시도 보고
마치 9월이라
뭉게 구름 바람도 제법 가을 폼을 입으려 하고
비리한 물 냄새, 억새풀, 건들거리는 갈대 숲
서로 빗겨가는 비슷하게 생긴 녀석들
언덕에서 대 숨 몰아쉬다가
내리막에 휘파람이다
혼자가기 싫어,
아니 한 길을 가겠다고 앞 뒤 앉아 패달을 돌리는 한 쌍
바람은 내 땀을 다 날리지 못하고
엉덩이는 바짝 긴장 되어 꼿꼿하다
무릎이 좀 쉬어가잔다.
그래 네가 고생이 많았을게다
문득 하늘 저쪽에서
고향 냇가를 건너다가 돌에 걸려 너와 같이 넘어져
등 뒤 책 보따리가 젖고
수 없이 얹혀지는 고민에 억눌렀던 초등생 나를 본다
그때로부터
나는 얼마를 달려 왔나
학창의 길, 결혼의 길, 직장의 길...
그리고 지금의 길
바람이 쓱 지나간다
그리고 나를 깨운다
그립다 그 날 그 길들이여
나는 왔던 길로 돌려 바퀴를 돌린다
보이는 풍경이 가볍게 보이고 지나가는 시간이 쉬이 간다.
태양은 어느덧 63빌딩 언저리에 있다
강물은 얼굴에 크림을 문질러 놓은듯 번들 거린다.
열기는 서서이 내리고
두 바퀴도 천.천.히.... 천. 천.히
나는 3천원에 빌린 너를 반납했다
순간 너를 쫙 살펴보는 아저씨
그리고 나는 속으로 중얼 거렸다
"그래 두 바퀴가 축으로 돌았었지
뒤에서는 돌리고 앞 선 너의 굴렁쇠는 방향을 잡고
빠르고 느리고
이 쪽 저 쪽으로
위험하면 브레이크, 힘들면 길가에 너를 세우고
길 길 길
너는 나를 오늘 좋은 길로 안내를 해 주었지
회상의 길로....
나도 내 것이 아닐 것이요
언제인가 반납을 할 때가 이르리니
내가 너와 다른게 무엇이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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