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존경으로

마음의행로 2011. 11. 6. 20:24

  "거리" 하면 왠지 멀어 보이며 떨어져 있어 보이고

"사이" 하면 좀 가까와 보인다.

사전을 보니 거리는 간격이라고 풀이가 되어 있고

사이를 보니 공간이라고 되어 있다.

하나는 2차원적인 것 같고 다른 것은 3차원적인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어릴적에 여러사람에게서 느끼는 거리는 새롭고 깨끗하고 맑아 보이고,

나이들어 느끼는 거리에는 옛날 토방처럼 정이 겨워 다 이해를 하고도 남아 군 고구마 같은 맛과 냄새가 난다.

아내와 살아 온지 35년이 넘었섰다.

아내 이야기를 들어 보면 색갈이 보이고, 빛이 보이고, 무게가 보인다.

옛날 추억에 걸린 상처도 보이고, 꿈이 깨진 먹빛 구름도 보인다.

의사도 아닌 내가 가끔은 어디가 아픈 것도 보인다.

바닷가의 돌들처럼 구르고 굴러 둥글 납작해 졌지만

그래도 모난 것이 있으면 조금 더 참고 넘기면 다 해결이 된다.

그동안 함께 살아 온 세월을 생각하면 후회되는게 참 많기도 하다.

지금 아내와 사이는 어떤 사이가 되어 있을까? 가끔 생각에 젖어 본다.

서울을 출발하여 부산까지 가는 인생이라면 우린 지금 어디쯤 지나가고 있을까?

김천일까? 대구일까?

그러고 보니 우린 기차 레일 위를 구르는 두 바퀴같은 사이가 아닐까?

세상 짐을 같이 짐어지고 구르고 굴러 부들 부들 맨들 맨들하여진 사이

조금만 멀어져도 가까와 져도 안 되는 사이...

그 사이를 뭐라고 해야 될까?

다 아는 사이... 이해하고도 남는 사이...

 

최근 몇달간 집안일을 맡아서 해온 적이 있다. 쉽게 이야기 하면 살림을 하여 본 것이다.

아이를 낳아보지 아니하고 자식 사랑을 이야기 할 수 없듯이,

살림을 하여 보지 않고 아내를 말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여도 하여도 남아 있는 일, 하고 나면 또 생겨 나는 일,

새롭고 멋진 일이라면 그래도 신선하고 해 보고 싶은 것도 있겠지만,

어제 한 일 오늘하고, 아침에 한 일 점심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끝이 없이 해야만 하는 일,일,일......

그리고도 또 해야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하는 그 곳에 내가 멈추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일을 평생하여 온 아내를 나는 어떻게 말해야 하고 맞아야 할까? 

그 답은 세상 어느곳에 숨어 있을까...?

옹달샘을 찾아가 보고 새벽 안개속에 묻혀 보고,

광야에서 소리를 쳐 보기도 한다.

지금 대구쯤에 와 있는 당신, 서울에서 쉴 사이 없이 미끄러지듯 온 거리

여기까지 이렇게 레일 거리를 유지하면서 달려 온 세월,

연약했던 여자의 몸으로 가꾸어 낸 살림들, 성장한 자식들, 그리나 오늘의 나를 보면서

당신의 손, 발, 얼굴, 가슴에서 비쳐 나오는 색, 빛, 무게를 가지고

광야에서 외칠 때 다가오는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너는 오직 존경이 있어야 할 것이다"

부부간의 거리는 존경의 거리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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