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茶 이야기

마음의행로 2011. 1. 19. 10:50

  사위가 딸과 함께 왔다.

딸 손에 뭔가 들려 있더니 엄마에게 내 보인다.

어머님이 다녀가셨는데 이것 골다공증에 좋은 차라고 주셨어

가만히 들여다 보니 무말랭이 차였다.

무를 잘게 잘라서 말리고 데치고 말리고 데치고 몇번을 해야 만들어지는 차란다.

자반을 내려다 보며  무 말랭를 구슬구슬 하게 말리는 사돈 손길이 눈에 보인다.

 

  건물 청소하시는 아주머님께서 사무실로 들어 오셨다.

아침 일찍 부터 오셔서,

건물을 두루 두루 돌아다니시며 쓰레기통 치우고 그리고 쓸고 닦고

허리 쭈욱 펼 날이 별로 없으셔서 인지 늘 등이 조금 굽어 있으시다.

올 봄 첫 싹 나오는 쑥을 잘 다듬고 데치고 말려서 만든 쑥 차 한봉지를 들고 오셨다.

별것 아니지만 여자들에게는 몸을 따습게 해 주는 쑥입니다.

그냥 차로 마시면 좋다고들 합디다.

쑥스러운 표정이지만 내면에 들은 정이 옛 할머님을 만나는 것 같다.

 

  옆 집 살았던 혜라네 엄마가 언젠가 다녀갔다.

가끔 왔다 가면 한나절 아내와 이런 저런 이야기 하며 보내곤 한다.

엄청 부자로 살았지만 주식으로 재산을 거의 다 날려 버렸다는데,

아직 남아 감도는 부티와 지갑이 엷어져 생긴 두개의 얼굴을 지닌 분

옆 집에 살면서 살림하며 애들 이야기, 반찬 이야기,

여러 세상 사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좋았다는 그 여자분이

잊지 않고 연결 지으며 살아가고 있다.

어디서 구했는지 강원도에서 케내어 만든 자연산 둥글레 차를 내 놓고 가셨다.

 

  남편 따라 중국으로 가서 6개월 마다 한국으로 나오시는 정운이 어머니,

중국에서는 옷 잘 입으면 아니 된다며 때 뭍은 옷으로 영락없는 중국 사람이 되어 사신다는 분,

사업이 잘되어 가니 점점 중국 정부의 손이 미쳐

예전만 못하다며 자꾸 지역을 옮겨 다니다가 철수까지도 고려해 본다며...

옛 정으로 꼭 나오면 전화하고 짜장면이라도 함께 먹자는 전화가 아내 앞에 울리곤 한다.

중국에 유명한 차가 많지만 그 중에서도 유명한 차로 불리는 보이차,

10년생, 20년생 30년 생, 40년 생에 따라 값이 천만원 대로 차이가 난다는 차를

만나서 한 덩어리 가져왔다.

몸을 따스웁게 하고 특히 병약한 여자의 몸에 좋다는 차가 우리집을 찾아 들어 왔다.

 

  차 중에서도 가장 흔한 차 같지만 우리나라 보리차 만큼한 차가 또 있을까?

구수한 향이며 속을 편안하게 하여 주고 보리의 영양도 함께 마실 수 있는 한국 차의 대명사

구하기 쉽고 만들기 쉽고 끓이기 쉽고 소박하면서도 품격있는 보리차

 

  아내가 형제들을 만나면 늘 그렇게 부르는 대빵 언니

지금은 많이 연로 하셔서 마음에 안타까움이 남지만

사랑스럽고 품격있는 말씨, 주변을 늘 돌아 보시고 챙기시는 그 큰 언니,

좋은 말이 아니면 남의 말을 절대 입에 담지 않으시는 언니께서

손수 만드시어 내 놓으신 뽕나무 잎 차,

 

집에 있는 차마다 사연들이 들어 있고 갖은 정성과 챙겨주는 마음이 스며든 차,

며칠 전에는 누가 떠오르고 오늘은 또 다른 누가 떠오르고

물어 볼 필요도 없이 정해진 한자리에 있는 차,

한번도 떨어진 적이 없는 차,

순번 바꾸어 가며 아내가 끓여 놓은 차를 우리 가족은 물처럼 마시고 산다.

오늘은 보이차에 숨겨진 정운이 어머님 사연이 따뜻한 차에 섞여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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