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직장 후배와 만나려면 40분의 여유가 있다.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나는 발걸음을 옮긴다.
요즘 천변은 얼마나 잘 가꾸었는지 꽃들과 예쁜길 나무들로
자연 생태계가 살아나고 있다.
여름의 비는 일요일에서 월요일 아침까지 계속 내렸다.
언덕을 내려가는 길이 나무 판자로 잘 짜여져서 층계가 편하고 멋스럽다.
어느쪽 길을 걸을까 하다가 양재천 쪽을 택했다.
이만 때면 줄기차게 피는 꽃이 있다.
적절한 키에 하얀 튀밥을 눌러 놓은 듯한 모양으로 생겼고
비를 맞은 모습이 푸르스런 빛까지 띨 정도에,
너무 주변에 많아 관심을 끌어 내지는 못하지만 한아름 꺽으면
좋은 꽃 한다발을 만들기에 충분한 개망초 꽃이 언덕에 서 흔들리고 있다.
계단을 내려 가니 야생초와 풀꽃들이 빗방울을 구슬처럼 달고 있고,
언덕 아래를 가보니 습지가 연못처럼 있는데
습지엔 부들이 파란 아이스케익 처럼 둥그런 대에 몸을 붙이고 바람에 건들 거린다.
개구리 소리는 조금 시끄럽지만 맑은 소리라 좋아하고
맹꽁이는 웬지 그 모습을 먼저 알고 있어서 그런지 그 소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오늘은 천 주변을 제법 그럴듯하게 울려 주고 있다.
메앵 꼬옹, 메앵 꼬옹 이곳 저곳에서 운다.
나도 따라 매앵 꼬옹 몇번을 하니 모두 조용해 진다.
맹꽁이는 "맹" 하는 놈과 "꽁" 하는 놈이 다르다고 한다.
혼자만은 "맹꽁"을 붙여서 할 수 없는 특별한 울음을 가진 동물이다.
조금 지나 다시 한놈의 시작으로 하여 합창이 재개되니
양재천 안이 맹꽁이 음악 교실이 된다.
좀전 언덕을 내려 오면서 꿩 한쌍이 보았는데 언덕에서 내가 내려오는 걸 보고
계속 주지하더니 내가 풀섶에 가릴 때까지 고개를 들고 경계를 풀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의심을 하는건 당연한지도 모를 일이나
야생이 인간을 경계를 하니 얼마나 우리 인간이 신뢰가 떨어졌으면 저럴까
생각을 하니 부끄럽기까지 하다.
초 여름의 비 내린 정오는 바닥의 축축한 기운과 후덥한 공기와 열로
천변을 가둬두고 있다.
한 바퀴를 돌고 나니 15분이 남았다.
떠나야 할 시간이다.
만나야 할 시간에 맞추기는 알맞는 거리와 시간이 되었다.
정오가 되가는 시간에 꿩소리가 나는 걸 보니
그 숫컷 꿩은 이제 경계를 풀고 안심하고 양재천을 노닐고 다닐 것이다.
20여분 휴식을 보내고 후배와 나눌 이야기를 준비하면서
양재천을 벗어나 나는 식당쪽 길을 쫒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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