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겨울 설거지

마음의행로 2010. 3. 2. 15:23

 봄을 맞으려니

겨울 청산이 앞서야 했다.

 

아내와 함께 겨울 산행에 입었던 옷들과

옷걸이에 걸려 땀 내음이 뭍혀 있는 두툼한 겨울복들,

오늘은 네들을 먼저 목욕을 시켜야 할것 같다.

 

들판, 야산, 호수가, 냇가, 습지를 돌아다녀도

끄떡 없이 지켜 준 겨울 찍사의 아랫도리가 되어준 바지들,

티셔츠, 쉐타들

행여 감기들세라 목에 뱀처럼 또아리 틀어준 목도리,

적절한 몸 온도 조절용 조끼들,

추위를 방패처럼 지켜준 등산 점퍼, 방한 점퍼들,

또 외피들

주인 상층부를 감사 주던 털 모자들, 그리고 내복들

 

몽땅 꺼내어 놓으니 부피도 부피려니와

왁자지껄 하다.

 

목도리가 땟물 나오는 바지더러 함께 못있겠다고 투덜거린다.

이래뵈도 주인님이 나 때문에 가시밭길 상처없이 돌아다니셔서

너보다 예뻐 하신 몸이라고..

바지들이 따로 놀라면 그리하란다.

 

한 통안에 몽땅 넣으려 하니 색갈별, 역할별

구별해 달라는 것이다.

통을 2개로 나누어 놓으니 곧 불만이 사그라 든다.

 

더운물 통에 갖다 붓고

하이타이 두 움큼씩 집어 뿌리고, 저어서

그 속에 두편으로 갈라 적셔 놓고

하룻밤 지내고 나서............

 

손엔 고무장갑 끼고

바지 가랑이 걷고 양말 벗고

들어가 발로 밟아대니

속까지 시원하다고 더 밟아 달랜다.

 

어떤 놈은 등긁게로 긁는 것보다 더 시원하단다.

뗏국물에 따라 손해 보는 놈도 이익보는 놈도

나중엔 모두 같은 탕물속이라

불만이 없어졌다.

 

찬물에 여섯번을 헹구고 나니

맑은 물이 나오는지라

다시 한번더 물을 붓고 두어 시간 담구어 놓으니

얼굴들이 말간해졌다.

 

이놈들 그래도 고맙다는 놈 하나도 없고

이 겨울 찬물에 고생시킨다고 투덜거리기에

옛다 모르겠다

찬물 비워 내고 더운물 다시부어

옥시풀인지 뭔지 파란물 한 모금 먹여 놓으니

지끈 소리도 없어졌다. 

 

다음날 부드러운 여자 손이

정신 쏙 빼놓을 통으로 옮겨

빙빙 돌려 군살 다 빼고 다이어트 몸 만들어 놓았다.

어지럽다고 헤모그로빈 달라는 놈들

사뭇 돌려대니 입이 말라 말도 못 떼어 놓는다.

 

햇살에 명태같이 된 몸 말리고

산허리 감싸는 안개로 네몸 흠뻑 적셔 

뜨거운 쇳덩어리로 밀어 대니

보톡스 맞은 것처럼 얼굴 쫙 펴져 나온다.

처음 가게에 걸렸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큰 옷장 안에서 한숨들 자다가

다시 겨울 돌아오면

구면으로 

그때 우리 다시 만나자.

나의 친구 겨울 설거지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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