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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꿔치기 한나절

걸망 매고 판 벌린 한나절로 가는 길 동네 젊은 친구 둘 담배 한 대 물고서 야 사는 것이 친구를 만나는 것인 것 같아 그럼 나는 뭐지 담배 맛만큼 쓰다가도 모를 안정감에 속고 있다는 듯이 비벼 끄고 오후에 비는 쏟아 붓겠단다 먹고 마셔야 산다는 한의학 박사 배 넷 바나나 3 단 당근 두 봉지 브로콜리 두 덩이 비트 한 바구니를 만나러 나절 시장은 살리려는 것들을 바꿔 주고 있다 구름은 살려 비로 바꿔치기 하고 나는 살리려 주스를 갈고 살아 있음을 글로 바꾸고 있구나 바꿔치기 한 나절이다

시 글 2023.06.23

한 이불 속 들어갈 때

한 이불 속 들어갈 때 그와 나누는 대화를 독백이라 합니다 둘이 속삭이려면 벽에 기댈 때 높이가 맞습니다 어떤 배경 이야기든, 예를 들면 아름다움 고통 지식 종교 등 그는 변색하지 않는 평등심의 소유자로 나옵니다 가끔 자전거를 타면 특별할 수 있어요 따라다니며 바퀴를 돌립니다 나는 무동력이 되는 경지를 맛보게 되지요 혹 배를 탄다면 검은 고래 한 마리 배 아래 희뜩번뜩 찰싹 붙습니다 늘고 줄임에 자유로운 길이 나와 같은 키 재기 들어도 입이 없고 보아도 전함이 없는, 먹물 찍어 산수 그려 내는 동양화가랄까 발뒤꿈 물고 사는 천성은 꼬리달린 신의 신봉자 여서일까 죽음이 영원한 거라면 순간 든 낮잠의 그림자 같이 걷고 먹고 한 이불속 들어갈 때 고스란히 한 몸의 이야기가 됩니다.

시 글 2023.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