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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키웠을까

허리를 잘라 순을 꽂으면 숲이 되는 골은 한 여름이 바쁘다 고구마 줄기 여린 밑을 어린 손이 타기도 하는 오후 방학 이어서일까 계절도 아직 비리다 지진을 감지한 둑은 해산을 준비하고 아이들 갈무리에 가을이 노곤하다 군 고구마가 맛있는 것은 아이는 내 아이인데 뻐꾸기 집에서 키워내서일까 햇빛을 녹여 보내 준 탯줄을 자를 때이다 꼭지가 그리운 너는, 세상에 없었던 너를 태어나 살게 한 고마움 때문 올 추위 구워내 줄, 가마 속에 들어갈 고구마가 미리 발갛게 익고 있다 줄기 하나 심었는데

시 글 2023.09.27

짜깁기한 몽타주

땅이 하늘이 웅얼거렸다 에덴이 떨렸을 때 아담은 풍선 구멍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뿌리는 끈질긴 촉수로 땅에 붙임성을 파고든다 어디서 생겨났는지 근육질은 향과 열매로 가족을 낯선 고을에 아뢰었다 '나하고 농사짓자'는 밥상 언저리에 아린 토 하나 애먼 숟가락으로 찔림을 당한 아침 상 허허 뒤꼭지에 보여 준 하얀 웃음 한 뼘은 진학을 묘사한 어머니의 눈치를 알아 챈 남자가 취할 헤아림 뿐이었을까 숟가락 하나면 열 두락 들판인 시절, 길이도 무게도 아닌 머리수가 잣대였을 태양을 담을 저수지 긴 제방은 여섯 알 고동 주판으로 쌓아 세운 가계부였다 일순간 폐에 바람이 다녀간 것은 벌어 왔던 논 밭 산 허리까지 갉아먹은 길어진 병와 아버지 쪽에 누가 더 서럽게 섰을까 떠들썩했던 제사 날 화투장들 저마다 박음질해 둔..

시 글 2023.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