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 6

입 그리기

엄마는 아이를 기다린다 선생님의 파도가 간혹 흔들린다 땡그랑 땡땡 서쪽 벨이 울리고 벨이 울리고 놓인 물고기가 선생님 손을 잡고 나온다 엄마가 반가워서 뛰어 비늘을 쓰다듬는다 선생님은 아이의 붕어입 파도를 전해 준다 그랬어 그랬구나 참 잘했어 벌써 붕어 입모양을 뿡뿡 내밀며 말 입을 만든다, 엄마는 우물우물하는 입 모양을 베끼며 아이가 말을 하고 있다 아무도 할 수 없는 말을, 들리지 않는 말을 엄마만 볼 수 있는 말을 호수 같은 두 눈이 서로를 그렁히 보고 있다

시 글 2023.01.31

안개 속 누군가를 바라본다

2023 신춘 문예 시를 읽어 내려 모방은 그를 가장 먼저 알아차리 게 하는 일 그의 손끝을 따라가 보며 습자지를 올리고선 그림을 배껴 쓴다 사유의 극장 예고편을 쭉욱 한 바퀴 물레질한다 사유는 캐는 게 아니고 오히려 정원을 돌며 정성껏 함께 심어보는 것이다 첫 세션이다 숲과 냇가와 바위와 풀들의 아픈 관절을 살핀다 놓여진 위치마다 마디의 사연을 들춰본다 고래의 혀가 새우의 위치를 캐 낸 수심 깊은 오목 지점에, 서 있는 어부의 마음이 되어 본다 한 연을 해석하는데는 우물에 빠진 숟가락을 달빛을 쪼여 비친 은어의 향을 헤아려 보는 일 두 번째 트랙이 끝이 난다 어디선가 해설사가 등장 해 할머니 이야기처럼 기시감이 든 꿈을 건반에 살짝 탓치해 주면 둠벙에서 배운 미꾸라지 수영이 선수촌 코치를 만나는 매끄러..

시 글 2023.01.23

연 줄이 끊기면서 생긴 일(자전의 방향)

*연 줄이 끊길 때 생긴 일 K회사에 들어간 사람은 누구나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밥 먹고 옷 입고 구두 끝을 세우지요 지하철은 2분마다 길이를 잊지 않습니다 겉옷을 입을 사람은 왼쪽에서 우로 안쪽을 걷을 사람은 그 반대 철길로 들어섭니다 입구 쪽 시계는 초침까지 맑고 투명하였습니다 끝나는 시간은 아날로그시계처럼 돌고 돌아 지치면, 그제야 말을 걸어 오지요 정신 차리세요 내일 늦지 않게 닭장의 닭이 알을 쑥쑥 뽑아주면 보이지 않는 주인은 웃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시겠지요 초침은 순간을 가르키지만 누군가가 달과 해를 도는 공전의 길을 만들었고 구심력으로 길들여왔던 걸까요 자전을, 그를 벗어나는 멍청해져 버린 어느 날 미끄러져 빠져도 셈이 없는 넓은 바다에 내 던져졌을 때 생겼어요 새벽 덜 깬 눈이나 밤..

시 글 2023.01.14

속세

범어사 해 질 녘 범종소리가 주변 온갖 만물상 속 자기를 깨우고 법 마당 3층석탑 법의를 두르고 별 길을 찾아가나 산새들 나뭇가지에 밤을 심었다네 스님들 동안거 숨 들었을 때 손에 잡힌 경전이 자라던 키가 겨우 잠에 듭니다 범종이 알린 메아리를 이데아라 하고 맥놀림을 그림자라 한 스님이 그리했다 하오 그 많던 자아는 어디로 물러 가고 작은 스님 신었던 고무신 법당 문 앞에 눈 감고 앉아 있습니다 법 일로 사는 배고픈 하루 스님의 호흡은 배꼽을 돌아나와 해 맑은 얼굴 우주 한 켠을 헤아릴 탑이 되었다가 새가 되었습니다 평생 주저 앉은 석탑의 침묵으로 흔들리지 않으려나 처마 끝 번뇌를 깨우려는 듯 땅그랑 깨어지는 풍경소리에 잠을 깨어 텅빈 공간이 들어오는 것을 봅니다 웅어웅어~ 범종이 알리는 새벽 예불 소리..

시 글 2023.01.11

애처롭다

애처롭다 얼음 언 분화구가 화성에 있다는데 뜨거운 주변 열기를 막아내면서 무언가 닮아지고 싶어 하는 눈 옴조롬이 서로를 견디고 있다 펭귄 가족들 서로의 몸으로 남극의 칼바람을 간절하다 더 이상 물러서면 무생명체 남극 저 눈을 녹여 누군 음료를 꿈꾸고 있다는데 폭로된 인간의 속도 드러낸 정복의 쓰레기 사람 없는 화성 그래야 산다 살려야 한다

시 글 2023.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