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글

선재길 늦바람 불어

마음의행로 2023. 4. 24. 23:25

좀 되었던 월정사 바람이 들어
본 적 없는 절 독경 소리 새어 들어와
났다 말았다 한 사찰이 끌어당길 때
이름에 목을 걸고 없는 사람 찾으러
헤매 나선 적이 자꾸 쌓였어
봄 절간은 기와불사 주문을
피해가면,
있어야 할 연을 묶지 않는
낭떠러지 흔적 하나를 떼어 버리는
어리석음에 빠질 거 같아
예정된 처사라도 되는 듯 줄 섰었지
이 일 때문이었어 바람이 그렇게 살랑거렸던 건
기와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띠 두르고
서까래 위로 올라가고서야
봄바람이 할 일 했다는 듯 차분해졌다지
길 위에 꽃이 피어 발걸음이 앞을 서고
양팔 들고 오늘 너는 자유라고 외쳐
혼자서 가는, 길 없는 길 될까
늘 서늘한 구석으로 남은 선재길
벌어진 입이 눈꼬리 마냥 찢어지고
단단한 다짐이 끌어낸 맨발
이십 리 산 길이 어이 치받고 올라오는지
냇물을 사이에 두고 넘으면 신선이
사는 곳 넘고 넘어오니
바라보는 곳이 바로 이 자리라
이곳이 그곳 그곳이 이곳 한 점
부처님 눈 안에 든 작은 세상이었어
길바닥에 돋아난 점자경이 뾰쪽뾰쪽
디딜 때마다 날 찔러
스캔하던 발바닥이 온통
지난날을 쪼아 야단맞은 듯
좌선하는 바위가 부처가 되고
잎사귀 연초록이 사찰 삭힌 바람 귀에
흔들려 선경에 들 뻔했어
맹인의 발걸음에 싹이 돋아
없던 길 열리고
갑자기 스님 한 분 나타나
초행길 알리 듯
월정사에서 시작된 상원사 숲 길은
작은 수행이 되어 날고 있을 때
발바닥 불火이 불佛이 되어
한 권의 경전을 다 읽어낸 봄바람은
베고프지 않았고
선재길 두루마리가 다 펴질 무렵
점자로 새겨진
색즉시공 공즉시색 하룻 경전은
어디론가 사라져 갔습니다
돌아가야 할 길 길게 늘어 선 앞
신선이 살았던 곳 창호지 안개 너머로
지워지고 디젤 엔진 소리 뭉툭한
그을림이 꼭 가야만 할 것 같았던
바람 든 봄 소풍을 챙겨
집으로 끌고 들어 온 하루

선재길 약 10km를 맨발로 걸어 다녀왔습니다
시간 나면 무념이 되어  가 보고 싶은 곳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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