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

아침이 열릴 때

마음의행로 2017. 9. 11. 03:08

 

어어흠

작은 방에 주무시는 할아버님,

어제밤 잘 자고 일어났노라

어서들 일어나라 알림이자 일어나라는 통보의 소리

서까래로 올라간 소리가 앞 마당으로 퍼져 담을 맞고

되돌아와 다시 안방으로 들어온다

어젯밤 아버님 잘 주무셨나 보네요

어머님 말씀이다

천우야 어서 일어나 우물로 가서 두레박으로

물 길어 올려서 동쪽을 바라보고 세 모금을

크게 마시고 오너라

어제 밤 끓여 먹인 쇠죽에다 쌀겨 좀 더 넣어

섞어서 오늘 밭 갈러 가야할 소에게 영양식으로

먹여 힘 좀쓰리고 소 밥먹이시러

아버님이 일찍 일어나신다

할머님은 벌써 터 밭에 가셔서 상추를 속아 내어

우물가로 오셔서 씻고 계신다

어서 오너라 우리 손자

할아버지 한테서 쫓겨나 물 마시러 왔구나

눈곱을 비벼 떼는 나에게 반갑게 하여 주신다

어머니는 몸베 옷을 입으시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대청 마루 끝에 있는 쌀독에 가셔서 바가지로

쌀을 퍼내시고 살강쪽으로 가신다

천우야 돼지 밥 좀주거라 이 쌀뜬물에다

쌀겨 가루를 섞어서

돼지 밥통에 한 바가지 부어 넣어라

천지야 그만 일어나고 마당 청소는 네 몫이잖어

어서 일어나 벌떡 일어나 어서

게으름 펴는 동생에게 내리는 아버님의 명령이시다

나는 재빨리 부엌으로 가서 밥 솥 아궁이에 불을 핀다

불을 제일 잘 뗀다고 몫이 내 것이 되어 버렸다

처음 지필 때 연기만 잘 피하면 솔 잎이며

참깨 가지며 불이 활활 붙어 빨간 불 속을 들여다 보며

이 생각 저 생각을 했었다

나무 잎은 타는 냄가는 늘 향긋하였고

가족의 따뜻한 품속같이 불땔 때가 좋았었다

닭장 문에서 닭들이 쏟아져 나온다

날개를 펴고 기지개를 펴는 놈 아침부터

쫓고 쫓기는 놈

뒷동산에 산비둘기도 구구구구 구구구구ᆢ구욱

아침을 알린다

대나무 숲이 아침에 이는 미세 바람에

움직일듯 말듯 소리가 날듯 말듯 그의 허파로

숨을 쉬기 시작한다

식구들은 차례로 하니씩 우울로 나와 세수를

하고 다 마치면 온 식구가 두 상에 나누어

이침 식사와 함께 하루를 열었다

너른 앞 마당은 환한 얼굴로 우리 집에

아침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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