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임마 너희들 어디서 왔어
울타리 넘어서 온 큰 목소리에 나는 깨었다
제법 키가 큰 애 둘이서 양쪽 손을 허리에 손을 엊고
폼을 잡고 시비를 거는 거였다
사실 나는 어릴적 몸이 약해 누구와 싸운다거나
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돼지 감자가 나오는 헛간 옆 도랑에서 감자를
케다가 우뢰가 하늘에서부터 터져 나왔다
형이 나섰다
너는 여기 가만히 있어라 이럴땐 한 놈만 눕히면
되는 것이다
그 순간에도 나에게 가르침을 남겨 두고
형은 대나무와 복숭아 나무로 된 울따리를
뛰어 넘었다
그 중에 큰 녀석을 잡아 넘어뜨리고
코피를 나게 했다
다른 녀석이 도망가자 소리지르니
둘 다 도망을 쳤다
이렇게 싸움은 쉽게 끝이 났다
그때가 아마도 내 기억으로는 아마도 네 살 때였으리라
형이 초등학교 가기 전이었으니까
나중에 보니 둘 다 초등학교 내 반 애들이 되었다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된 동기는 고모님이
우리집 바로 아랫쪽에 살고 계셔서 할아버님께서
이곳으로 정하셨던게 아닌가 생각했다
마을은 어마하게 크고 양반 문화가 가득하고
요즘 말하면 문화제와 여러 역사적인 배경이
깊은 명성 있는 마을이었다
당시 시골인 리 단위에 중학교가 있었으면
여러 짐작이 가능 하리라
친인척은 겨우 고모네 집 뿐이었다
마을이 새로우니 돌아다니기에도 부담이 되었다
모르는 사람이 오면 시비를 걸어 정체성을
묻고 신고하거나 때려 보내는 문화가
6.25 후 나라 전체에 퍼져 있었다
학교에 다니면서 점차적으로 마을이 접수가 되었다
친구들이 늘어나고 놀러다니다 보니
많은 걸 보고 배우게 되었다
배움이 높은 마을 임을 알게 된 것이다
향교 문화가 꽉차 있어서 글을 모르거나
학식이 낮으면 출입을 못하는 마을이었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이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당시 사랑칸에서 흘러나오는 시조를 읊는
노래 가사이다
지나가면서 들은 첫 줄의 시조를 지금껏 읊을 수가 있다
글자 두 자 부르는데 요즘 노래로 보면 한 절보다
길다
그 음을 타는 묘미는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음이 길게 이어지는데 끊기는듯 이어지고
올라갔다 깊숙히 내려오고
공명음으로 소리를 부풀렸다가
가늘게 빼내 오고를 숨이 끊이도록
뽑아내는 시조 읊기
내가 지금 그걸 읊으면 주변이 깜짝 놀랠 것이다
옛 것도 많이 알아 시조도 읇을 수 있는 여유도 있고
거기에다 컴퓨터 공학까지 했다 하면 ...
허지만 나는 늘 이 마을에서 외로웠다
학교에서도 낮설다는 느낌이 나를 떠나지를 않았다
명절 때이면 다른 집은 떼를 지어 세배 다니는데
겨우 우리집 안에서만 이루어졌다
부럽고 외롭고 등치 큰 우리집 초가지붕이
자꾸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이런 마음은 평생 동안 이어져 내려 왔다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너무 자랑스런 내 고향을 시간을 두고 이야기해도
부족하리 만큼 열정적이지만
내 구석 한 켠에는 늘 부족함이 들어 있었다
생각해 보니 고향에 대한 정체성을
앓고 있었던게다
초등학교 동창회에도 나가도 그리 신이 나지 않고
그런 어떤 분위기기를 스스로 갖게 됨은
다 이런 배경으로 인한 것이다
고향에서도 다 알아주는 일등 가문으로 이름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내 성은 우리 동네엔 우리집 한 집 뿐이었다
박씨 조씨 최씨 가문이 들어 찬 곳에서
느끼는 벽이 늘 대문짝처럼 높이 느꼈던
어린 학교 시절이었다
고향에 대한 정체성 하나로 이런 과정을 겪었다면
인간 하나에 대한 정체성은 얼마나 크고 복잡한 것일까
누구인가, 어디로서부터 왔는가
왜 무엇하러 왔는가 등
누구냐 라고 스스로에게 물어 보는 것이다
사실 모르는게 너무 당연한 일 일 수도 있다
차라리 삶을 어떻게 사는게 좋은지를 밝혀
행하고 사는 편이 더 좋지 않겠는가
그래서 정한게 있다 신이었다
노력해도 알 수 없는 영역은 신에게 맡기자
어떤 신이되든 각자에게 선택의 권한이
있는걸로 믿어 두자
인간이 기본적으로 해야할 일,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될 것이라고
정체성을 갖고 사는 길이 될거라고
신의 큰 질서 틀 안에서, 아니 북극성과도 같은
방향계를 가지고
밝고 활기차게 즐겁게 세상에 항상 감사해 하며
도와가며 살아가자고
여기에서
삶의 가치를 하나씩 세워 가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