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

은하수로 세수를

마음의행로 2016. 12. 28. 04:40

 

년말 휴식 제안을 한 큰딸

2박3일을 가평을 가기로 결정한다

서울에서야 한 시간 반이면 도달하는 거리다

가평도 시가지 근처는 오염이 많다

산골 길로 깊숙히 들어가야 서울을 지운다

가평과 춘천은 연접하여 있어서

춘천에 근접할수록 공기가 깨끗하다

서울을 벗어나는 이유는 단순하다

서울은 거대한 개스실이기 때문이다

벗어날수록 숨이 편해진다

사는것 같은 느낌이 들어온다

차 소리를 지워버리고 매연은 날려버리고

때 묻은 생각은 씻어버리고

생각을 줄이고 단순하게 지내는 것만으로

휴식을 즐기게 되었다

서울의 바쁜 생활은 정신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느긋함이 없다

왜 그리도 바쁘게 서두르는지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다

아마도

하늘에 별이 없는 세상에서 살기 때문이리라

맑은 꿈 다 사라졌다

부모님 생각 엿날 친구 생각

우주 공간적인 부피를 잊고 사니

땅바닥을 기어다니고 사는 짐승이나

별로 차이가 없다

휴식이 끝이 나면 또 개스실로 들어가야 한다

산속에 몇 채 있는 시골 집을 둘러보러 다녔다

어찌들 사시는지 뭘로 벌어먹고 사시는지

연료는 어떻게 해결하시는지

애들 학교는 어찌 보내는지

시장은 어디로 다니시는지

물은 어디서 길러 드시는지

산속 떼기밭은 어떻게 일구시는지

마실은 어디로 다니시는지

사나운 개가 제일 먼저 컹컹 댄다

이방인의 냄새와 도시 색갈에 대한 저항이다

산골은 비어 있다

아무도 없다

미안해서 접근도 못하고 만다

밤이 되니 불빛이 나오는걸 보면

사람은 살고 있는 곳이리라

외딴 세상에서 살다가

외딴 세상을 보면서 어찌 사느냐고 묻는다

밤 공기가 너무 좋아 밖으로 나왔다

시꺼먼 산이 앞을 막는다

하늘의 별빛이 아니면 산도 하늘도

구별이 아니됐을거다

다시 어릴적으로 돌아간다

별로 꿈을 꾸던 시절이다

별로 셈본을 하던 시절이다

잊혀졌던 일들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님 형제 자매

밥상만도 세개나 된다

어떻게 먹여 살려 내셨을까

어떻게 가르쳐 내셨을까

부모님 생각에 가슴 한 편이 저려 온다

이런 곳에서 사는게 진짜 사는 것 아닐까

누구나 생각하기 쉽지만

살라고 하면 못 사는 곳이 바로 여기이다

불빛 보고 사는 사람은

별빛 보고는 못 살아요

너무나 쟁쟁한 10 여년 전 어느 시골 농부의

그 말이 발 앞에 떨어진다

한 발자국도 못떼고 도망갈 우리다

새벽에 보니

엿날 보았던 삼태성이 이마 앞에 떠 있다

하늘이 많이 돌아 갔다

산과 마을은 움직이지 않는데도 말이다

오빠 생각 노래가 떠오른다

저 검은 산을 보고 넘어 어느곳에

저 별을 보고 어느 하늘 아래에

꿈오빠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글도 쓰게 하고 시도 짓고 그림도 그리고

피아노도 치게할 오빠가 있었다

부시시한 모습에

아침 식사 시간에 큰 딸이 말한다

아빠 세수 하셨어요?

그럼!

네 덕에

새벽에 일어나 별 비눗물로 문지르고

은하수로 씻어 냈다

그래서인지

아침 밥이 너무 잘들어 간다

한 상에 둘러 앉아 함께 밥 먹어본지도

이 삼 십년은 된 것같다

고맙다

오랜만에 한 가족이 되었구나

'나의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령도가 살아가는 방법  (0) 2017.06.11
덕적도  (0) 2017.05.18
훠어월 훨훨  (0) 2016.12.27
세월의 길이 아니라면  (0) 2016.12.18
공산성과 부소산성  (0) 2016.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