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

훠어월 훨훨

마음의행로 2016. 12. 27. 04:44

 

산에 오면

흔적을 남기지마세요

이 세상을 살면서

무얼 남길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했는데

성 이름 석자 역사에 남긴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어느 때부터인가

짐이 가벼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젊은 시절 세계 문학전집 한국 고전문학 전집

그동안 읽어 왔던 소설 책과

옷걸이에 걸쳐 놓고 입지 않는 옷들

꺼내서 다 버렸다

헌 책방에 팔 수 있는 것은 골라서 팔아

새 책을 몇 권 사왔다

줄어들다 늘어나고 줄어들다 늘어나고

이사를 가면 짐이 많이 줄어 드는데

나이가 나이인지라

이사는 부담스럽다

이만해도 제법 단촐해 지고 가벼워졌다

증조 할머님께서 늘 머리를 단정하게 하시고

물건을 정리하시고 앉아서 청소를 하시는 모습이

이제는 이해를 할 쯤이 된 것 같다

주변 정리를 하셨던 것이다

버려야할 것 하나가 더 있는데

추억의 시절을 담이놓은 앨범이다

나로써는 아깝지만 남에게는

그 많은 세월 이야기를 알기나 하겠어요

한 장 한 장에 소설 책이 한 권 일텐데도......

살다 가면서 남기고 싶은게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그동안 써 온 단문의 글들을 책 한 권으로

만들어 남기고 싶은 것 하나이다

아 그러고 보니 버리기 아까운 것

하나 더 있다네

성경책 정성스럽게 만년필로 1년 만에

대학 노트 열아홉 권에 써 놓은 노트이다.

어느날 막내 딸이

아빠!

성경 일필한 노트는 나 줘

나는 뭘 숨기려다 들킨 것처럼

움찔했다

저 애가 나를 무심 아니게 보아 왔구나 싶었다

앨범은 그냥 바람에 날려 보내자

바람으로 왔으니 너도 바람따라 가는게

순리 아니니

애들 가슴에 그 만큼 많은 사진을

찍어 두었으면 되었지

그림으로 까지 남길려고

빈 몸으로 왔다가

삼베 옷 한 벌 벌어 입고가면 되었지

길이 없어도 막히지 않고

삶이 없어도 살아 있고

세월 지나가도 아깝지도 않고

홀로 다녀도 외롭지도 않고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고

약이 없어도 아픔이 없고

천 근 만 근 몸둥아리 깃털처럼 가벼웁고

바람처럼 자유롭게

이 세상 저 세상 쏘다녀도 힘들지 않는

어머님 배속에 있기 전

그리 좋은 세상으로 가면서

뭘 남겨두고 가겠다고....?

훠어월

훨훨

훠어월

훨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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