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

"사랑과 미움 고리를 이루며/장영희("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에서)

마음의행로 2010. 5. 26. 16:42

  요새 수수께끼와 심취해 있는 초등학교 3학년 조카 건우가 물었다.

"이모, 지금 세상에서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다 하고 있는게 뭔지 알아.?"

"글쎄,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늙어가고 있겠지."

웬일로 내 머리에서 지박한 답이 생각났다 싶어 얼른 대답했다.

"늙어가고 있다고? 틀렸어 답은 모두 숨을 쉬고 있다는 거야"

 

건우가 의기 양양하게 말했다.

태어나자 마자 모든 인간은 "늙어가게" 마련이니 내 답도 맞다고

항변할 수도 있었으나 그만 두었다.

사실 내가 건우에게 정말로 하고 싶었던 대답은

"이 세상사람 모두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마음 속에서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미워하고 있는 것이다" 였다.

인종이나 국적, 나이나 직업에 따라 우리 사는 모습은 각양각색이지만

우리 삶의 모든 일은 결국 사랑과 미움의 관계로 귀착된다.

 

"너는 지금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 라고 답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열정적으로 미칠만큼 누군가를 사모하는 사랑일 수도 있고,

아니면 구태여 의식하지 않더래도 늘 마음속에 간직한 사랑일 수도 있다.

크고 작던 그 누구의 마음에도, 아무런 그악스런 살인범의 마음속에도 분명히

사랑은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는 복병처럼 누군가를 향한 미움일 수도 있게 마련이다.

정말이지 죽이고 싶을 정도로 강한 미움일 수도 있다.

천사같이 착한 사람 마음 속에도 남을 미워하는 마음,

상처를 준 이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보통 세 부류의 사람을 알고 지낸다고 한다.

  첫째는 친근감을 느끼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나에게서 다섯 걸음 떨어져 있다.

서로 넘어져도 다치지 않을만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어서

서로의 실수에 대해서 관대하다.

 

  둘째는 사랑하는 이들인데 그들은 나에게서 한 걸음쯤 떨어져 있다.

서로의 자유를 존중하기 위해 약간의 거리를 유지하지만

내가 넘어질 때 함께 넘어질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나 때문에 자신도 다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넘어질 때 기꺼이 내게 손은 내민다.

아니 함께 넘어지고 서로 부축해 일어난다.

 

  셋째는 나를 미워하는 이들인데 그들은 나와 등을 맞대고 밀착되어 있다.

숨소리 하나 까지 나의 움직임에 민감하며 여차하면 나를 밀어버리기 위해

꼭 붙어 있다.

언제나 내 실수를 기다리고 있다가 교묘히 이용하고, 넘어지는 나를 보고

손뼉치거나 더 많이 다치는 쪽으로 밀치기도 한다.

 

건유의 수수께끼처럼 우리는 살아있기 때문에 숨을 쉬고 사람이기 때문에

누구나 서로 사랑과 미움의 기다란 고리를 이루며 살아간다.

 

나는 내가 아는 사람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을까. 이 험한 세상을

살면서 한 걸음 사이에 두고 있는 사람들 보다는

너 죽고 나 살기로 밀치고 밀리면서 나와 서로 등을 맞대고 서 있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이 세상에 나 같은 사람들이 마음을 바꾸어

너무 멀리서 있다면 조금 더 앞으로, 등을 맞대고 서 있다면 조금 뒤로

함께 넘어지고 일어나며 운명을 같이 하는 

한 걸음의 거리를 유지한다면 이 세상에서 저런 몹쓸 전쟁 따위는

없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