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야 임마 니네들 어디서 왔어?

마음의행로 2008. 11. 6. 14:47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던 곳을 일반적으로 답으로 댄다.

나는 이런 물음에 어디라고 해야 할까?

아랫집은 고모님이 살으셨는데  대나무와 가지된 울타리로 막혀져 있어 조그마한 개 구멍으로 통할 수가 있었다.

 

 어느날 헛간과 고모집과 사이에 샘에서 버려지는 물과 빗물이 흘러나가도록 하기 위한 또랑이 있었는데

그 사이에는 돼지 감자가 있어 땅을 파헤치면 감자가 이곳 저곳에서 나왔다.

감자나무는  해바라기 보다는 가늘고 긴 줄기로 되어 있었다.

감자는 못생기고 맛도 별로여서 잘 먹지를 않았지만,

워낙 가난한 때 살았던 고로 캐어다가 삶아 먹곤했다.

이상하게도 이 감자는 뿌리와 연결이 지어지지 않고 뚝뚝 서로 떨어져 있어

따로 따로 생겨난 것처럼 생각이 들적이 많았다.

감자를 한참 케고 있을 적에 갑자기 우람한 외침이 있엇다.

 

 "야 ! 임마 니네들 어디서 왔어"  형과 함께 감자를 케고 있을 때였다.

그네들을 보니 나 보다는 조금 큰 두아이 양손을 허리에 붙이고(소위 재고) 서서

눈을 크게 뜨고 우리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조금 놀라서 어정쩡 서 있는데, 형은 갑자기 울타리를 한 번에 뛰어 넘어 가더니

두 아이중 한 애를 넘어뜨리고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는 것이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이럴땐 한 놈만 패주면 되는거야" 라면서 혼내주고 있었다.

나는 울타리 밖에서 구경만하고 있었다.

갑자기 옆에 있던 아이가 "코피났다" 라고 외치니 얻어맞던 애가 그냥 울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한애가 "도망가자" 라고 말하며 도망치니 싸움은 쉽게 끝이 났다. 

이때가 다섯살 때였던 것 같다.

 

그 애들은 나중에 나와 같은 초등학교 동창이 되었다.

추석 명절 같은 때이면 줄줄이 서서 논둑길 밭둑길을 건너 야산에 있는 산소에 가서,

일가가 함께 모여 성묘를 하는 것을 보면 늘 나는 외로움을 격었다.

왜 나의 주변에는 저렇게 가까이 할 수있는 친가들이 없을까?

우리는 태어난 곳에서 뚝 떨어져 살아서

언제나 남 이야기를 듣고서야  친척관계를 부르는 법을 얻어 듣고서 깨달았다.

항상 나의 동네가 아닌 것 같고 친구도 늘 낮 설었다.

그리고  친한 친구는 한 두사람 뿐 마음이 늘 비어 있었다.

요즈음도 초등학교 동창들이 "왜 너는 자꾸 우리와 멀어지려는 것 같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럴리가 있나,  하면서도 속 맘에 있는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삭이고 만다.

 

나이들어 고향에 가서 살라고 하면, 나는 지금도 예전이나 마찬가지로 낮설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야 ! 임마 니네들 어디서 왔어?" 

이 한마디가 내 고향에 대한 정착을 못하고 이곳이라 할까? 아니면 저곳이라고 할까? 

망설여 지곤 한다. 

내려가서 살려고 하다면, 정 붙이고 그곳에 가서 살 수 있을까? 의문도 하여 본다.

 

고향에 대한 안정감이 적은 아이로 성장해 오늘에 이르는 것을 보면,

정체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 인가를 생각하여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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