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할아버지 일기장엔...

마음의행로 2010. 5. 13. 22:18

요즈음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기가 쉽지 않다.

자식들 시집장가 보내고 나면 이제는 쉬려니 했는데

여지가 없이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딸은 딸대로 자식을 부모한테 맡긴다.

절대 안 길러 준다고 몇번씩 다짐을 해 놓았는데도

마이동풍격으로 지나치고들 만다.

그 손자.녀들 귀엽고 좋기는 하지만

요즘애들 얼마나 힘좋고 말을 안 듣는지 벅차기 마련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노릇하려면 별수 없는 노릇이 될 수 밖에 없게 된다.

 

버스 문이 열리니 할아버지 한 분이 손자녀석을 먼저 차에 올려 놓고

뒤따라 오르신다.

먼저 손자녀석 자리잡아 주고 카드를 꺼내어 차비를 계산하신다.

앞자리 쪽으로 따로 따로 앞 뒤로 자리를 잡아 앉는데

꼬마녀석 몇마디 하더니 잠에 빠져버린다.

한참 후에 차에서 내려야 할 장소에 가까워지자

손자를 흔들어 깨우는데 일어나지를 못한다.

몸을 붙들고 일으켜 세워도 축 쳐서서 잠을 잔다.

내려야 한다고 이야기를 급하게 하여도 소용이 없다.

주변은 모두 관심을 보이나 아무도 도와 드리지는 않는다.

삶의 한 장면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차는 다음 정거장으로 출발을 하였다.

계속 재촉을 하니 겨우 눈이 떠진다.

할아버지는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손자를 다구쳐 세워 보지만

몸을 가누지 못한다.

할아버지 혼자 유치원 가방든 손자를 들고 내리기엔 힘이 되지를 못한다.

할아버지는 차비 계산을 위해 학생에게 카드 체크를 주문하니

학생이 내림 체크를 하고 드린다.

어서 내려야 한다 정신차려 정신차려 ....

소리를 높여 보지만 눈은 살아있는 빛이 아니다.

 

옆에 계신 할머님 한 분이 나선다.

재치가 많으신 분 같다.

꼬마한테 애 너 할머니가 데리고 가야겠다.

할아버지 놔두고 어서 할머니하고 가자  ...어서 가자 할머니 하고

이러니 꼬마 눈이 크게 떠지더니 할아버지 손을 꼭 잡는다.

모르는 할머니가 데려 간다니 조금 놀랜 모양이었다.

한 정거장 앞에서 부터 깨우기 시작하여 정말 내려야 할 정거장에서

눈을 뜨게하고 내리시는 할아버지의 지혜와

할머니가 데려 가겠다고 하여 놀라게 하여 잠을 깨워 내리게 한 할머니의 지혜가

오늘은 돋 보였다.

 

그가 저나 손자녀석 얼마나 할아버지를 믿었기에

그렇게 깊게 잠에 들 수 있었는지,

믿음이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 아니었겠는가 싶다.

할아버지 일기장에는 오늘 일을 뭐라고 쓰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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