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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이 있으면.....?

마음의행로 2009. 3. 25. 17:52

봄이 되었다. 가까운 산에 진달래가 잎새도 나오기 전에 그 선분홍 꽃잎을 피어 내 놓았다.

잎이 나오고 난 다음에는 아무래도 덜  외로울 것 같아  먼저 빨리 나와 외로움을 갖고 싶었었다. 진달래의 외로움은 진달래 밖에 모른다.

양재동 동산을 오후 3시쯤이면 산길 오솔길을 한 학생이 넘어 집으로 간다. 외로운 길, 외로운 나무들 아직 잎새도 없는 흔들리는 나무 사잇길을 그는 산을 넘으면서 그 만의 외로운 꿈을 갖는다. 

영화관을 찾는다. 시간을 떼우려고 하는 짓인가? 영화가 잘 됬다고 한다. 소 한마리와 할아버님의 외로운 이야기이다. 둘이는 너무도 닮았다. 고단한 삶이면서도 그대로를 받아 들이고 나이들어 힘든 만큼의 일을 함께하고 산다. 그 외로움은 이제 한나라을 들썩이는 큰 사건을 만들고 말았다.

천수만의 새떼들의 군웅이라던가? 수천마리가 함께 구름을 만들고 바람을 만든다. 왜 한 두마리 아니고 구름을 지었을까?

사진가는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그들을 찍어 멋진 모습이라고 전시하곤 한다. 나는 왜 그들이 외롭게 보이는가? 삶의 근본은 다 나는 외롭게 보인다. 잘못된 것일까?

이젠 이런 모습을 보기가 힘들다. 조용히 카페에 앉아 담배 연기를 피어 올리는 모습말이다. 담배 연기 만큼이나 그 자는 더 외롭게 보이던 것이 아니었는가? 

열려있는 인터넷 컴퓨터의 바다에서도 모두 외로워 자기 머리를 내밀고 흔들어 댄다. 나 여기 있어요. 찾아 주세요. 그림도 있구요. 글도 있구요. 뭐든 물어보면 알려 줄 수도 있어요. 햇빛을 먼저 보려고 키를 서로 먼저 키우려고 하는 음지 식물들의 가냘프고 외로운 목소리를 듣는 것 같다. 

가끔은 외로울때 커피 한잔으로 메꾸려고 한적이 있을 것이다.  커피의 맛 향을 통해 잠시 외로움을 달래려다 그만 더 외로움에 빠지고 만다.

 

어릴적 아버님이 홀로 논을 새로 경작하기 위해 삽질을 하는 것을 큰 들판에서 본적이 있다.  외롭고 고단함이 한삽 한삽에 실려 있었다.

나는 죄 지은듯한 마음에 짓눌려 자리를 쉽게 뜨지를 못했다. 그 힘들고 고단한 외로움을 나는 한번도 잊은 적이 없다.

명절이면 자식들 우르르 손자들까지 시끌시끌 잔치집이 되다가 꿩 새끼들 마냥 키워서 다 떠나 보내 버리고 텅 비어 버린 집 사립문에서 자식들 가는 길 방향을 한없이 지켜 보시는 부모님의 마음에는 얼마마한 외로움이 뭉쳐 있을 것인가?

사람은 한번 더 살고 싶어 죽는다. 아니 외로움이 죽지도 못하게 한다. 영혼을 만들어 죽어서도 존재한다고 하면서 그 진한 외로움을 비껴 나가려고 한다. 몸은 썩고 불태워져도 영원히 살수 있다나......뭐

 

외로울때 글도 잘써진다. 머리속이 가지런하고 마딘 글 줄기가 잘도 빠져 나온다. 언제 배운것 같지도 안는데 줄거리도 역어지고 시 같은 것도 끼어든다.

신은 외로워 세상을 지었다. 그리고 보기에 좋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 사람을 지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음양을 갖춘 둘을 지었다. 그리고 재미있게 사는 그들을 보면서도 정작 본인은 더 참기 어려운 외로움에 빠졌다.

그래 꾀가 났다. 선악을 만들어야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 즐거움을 맛보아야지.

대 성공이었다.

아마도 선악을 만들지 못했었다면 신은 자살을 했을 것이다. 니이체가 신은 죽었다고 했단다.

그러나 신은 오늘도 재미있어 하신다. 선악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 오늘까지도 그는 죽지 않았나 보다. 웃자는 이야기이다.

외로움으로 인한 결과는 좋은것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천하를 지은 신도 외로웠다. 하물며 우리 인간이야 얼마나 외롭지 않겠는가?

천하를 다 가졌다고 한들 외롭지 아니하겠는가?  

나도 신처럼 외로움을 이겨나가는 나만의 좋은 방안을 꼭 가지고 있어야만 할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