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로 왔다갔다 하다보면 여러가지 문화와 접하게 된다.
지하철마다 타는 사람의 모습이 조금씩 다르고 시간대별로도 조금씩 다르다.
또 지하철에서 나는 냄새도 조금씩 다르고 역에 따라 향수 냄새도 바뀌어 간다.
외국인이 많이 타는 장소도 있고 등산객이 주로 내리는 역도 있다.
그 중에서 책을 읽는 좋은 문화도 엿볼 수 있다.
아침 출근시간대에 내 놓는 무가지 신문들은 시민들을 글 읽는 습관을 만들어
한동안 지켜보니 사람들이 점점 책을 읽는 모습으로 문화가 바뀌어 가고 있었다.
일본을 몇번 방문을 하면서 지하철을 이용하곤 했는데
늘 느꼈던 일로 두가지가 생각이 난다.
먼저는 여성들이 자리에 앉아서 빈 시간을 이용하여 하는 뜨게질이다.
알뜰하기도 하지만 자신을 키워가는 모습들에서 여성들의 한 단면을 보게 된다.
다른 하나는 그들 손에 들려진 책이다.
일본에서 서점을 찾아가 보면 크기가 다른 다양한 종류의 책을 발견하게 된다.
그 중에서 맘에드는 것은 조그마한 size책자들이다.
간편하게 휴대하기 편하게 생기어 쉽게 꺼내 읽기가 편리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우리나라는 몰라서가 아니라 문화가 맞지 않아 지금도 작은 책을 만들지 않고 있다.
그런 작은 책을 지하철에서 읽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 저런 독서의 힘이 일본을 만들어 가는구나 하고 느꼈다.
우리도 2-3년 전 까지는
지하철 내에서 책 읽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선진국형으로 되어가는듯 하여 흡족한 생각이 들곤했다.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지하철에는 여러가지 문화가 바뀌어 가고 있었다.
먼저는 전화 벨소리이다.
기상천외한 소리는 다 모였다. 무슨 경쟁이나 하는 것처럼 요란스러웠다.
젊은 사람들은 모두 손에서 핸드폰이 떨어지지를 않는다.
잠들어 가면서도 꼭 쥐고 있는 핸드폰은 호주머니를 거부하고 있었다.
남녀가 함께 앉아서 메시지를 서로 주고 받으면서 킥킥하고 재미있어 한다.
말이 필요가 없게 되었다.
전에는 주변을 살펴보기도 하고 누가와서 기다리는지 어르신인지 임신한 아주머니인지
자리에서 일어나 양보하기도 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이 끼어들 틈도 없다.
핸드폰만 보고 있으니 상관이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앞에서 늘어놓은 책을 읽는 문화는 찾아볼 수가 없게 쏴악 사라졌다.
대학생들의 공부하는 모습도 없어졌다.
그 시간이면 다른 뭔가를 스마트폰이 재미있게 제공하고 있을터이니 말이다.
요즈음은 50대 이상의 아주머님들의 스마트폰 실력과 위력을 발견하게 된다.
등산 갔다와서 찍은 가을 단풍 사진을 누군가의 핸드폰 속으로 넣어주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이 기능, 저 기능을 섭렵하다가 내려야 할 역을 놓치기도 한다.
가장 아쉬운 것은 바로 책 읽는 문화의 상실이다.
책을 들고 있거나 읽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무가지 신문을 읽는 사람도 크게 줄었다.
재미있는 게임이 있다. 만화가 그 곳에 있다.
어제 사놓은 주식 시세가 그 안에 들어 있어 살까 팔까 생각하고 있다.
가장 인기있는 단어에 손이 가면 요즘 시대에 맞는 대화가 들어 있어 뒤처지지를 않는다.
영화 한 편 담아 놓고 즐기면 된다. SNS를 이용한 대화는 무궁무궁하다.
불 특정 다수에게 내 의견도 보내고 생각을 받기도 한다.
나에게 온 무수한 말에 신경을 쓰기도 하고
트위터나 페이스 북을 이용하면 연관없는 사람이 나에게 다가와 있고 무관한 내용이 날아오고 가게 되니
이상한 인연의 끈들에 의해 끌려가기도 한다.
카메라 라디오 텔레비는 기본 기능으로 들어있고 네비게이션으로 이용도 하고
주변 먹거리들이 손안에 다 들어 온다.
아니되는게 뭘까? 뭐가 있을까?
온 세상사가 여기에 다 모여 있으니 다른 것은 필요가 없을 것이요, 관심이 없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책도 이 곳에 있으니 무슨 종이 책 읽는 이야기를 하느냐고 따지면 할 말이 없게 되어질 수도 있다.
요즘 인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줄곳 나오고 있다.
디지탈의 재미있고 흥미있고 실시간에 직접 억세스 하는 문화와는 아주 딴판인 문화로 이방인인 것처럼 되어버렸다.
경쟁에서 승리하는 체계에 익숙하여져 버린 세상에서 안 되어 보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사람이 태어나서 사람답게 살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사는 것을
일깨워 주는 학문 이야기 이다.
우린 인문학을 항상 떠나서는 아니된다. 산업화, 정보화를 지나 문화가 중요시 되는 세상에 접하고 있는 지금
디지탈화는 새로운 매체로서 다양한 생활에 편함을 주고 있고
상상을 현실화 시켜가는 가치가 높은 기술 기반이며 구현 도구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럼에도 북구하고 디지탈 문화는 우리에게 큰 명암을 던져주고 있다.
가끔 이러다간 인간성란게 없어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염려를 가지게도 한다.
너무 피팍해져 버린 세상사를 보면서 지켜져야만 할 가치를 찾게 하는 인문학의 수혈이 너무 필요한 시점이 되고 있다.
어쩌면 편함은 있으되 평안이 없어 보이는 것이다.
이런 모습이 싫어서
어떤분은 아예 핸드폰이 없이 사시는 분도 계신다.
느림의 미학늘 말하지 않아도 되고 여유라는 여유는 다 갖추고 있고 그렇다고 소통이 되지 않느냐 하면
더 좋은 소통으로 옆에서 부러워 하는 분도 계신다.
서점에 가 보면 그래도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는다는게 반갑다.
어떤 서적을 사든 우선 책과 면하게 되는 사람이 있다는게 위로를 받게 한다..
책을 크게 두가 종류로 나눈다면
하나는 자생을 위한 책이다.
생활을 하고 살아가기 위한 것이라고 할까?
공부 잘하고 더 부자되어 잘 살고, 건강하게 살고, 인간관계에 관해 실패하지 않고, 문명의 혜택을 많이 보고 등등
이런 책들이 요즘 눈에 띄이게 잘 팔리고 있다.
경쟁에서 이기고 살아야 하는 유전자가 뇌 속에서 점점 커져가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광경이라고 할까?
또 하나는 자존을 위한 책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사는 것인가? 사람답게 사는 길은 무엇인가?
스스로 자존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세는 무엇에 있는가? 등등
소위 삶에 대한 s/w라고 할까?
앞의 것은 즐거움이라고 한다면 뒤에 것은 행복에 관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무리 하여도 만족이 없음은 자생에 관한 것이겠지만
조그마한 단어 하나에도 감동하고 그 뜻에 감명받고 누구의 간섭도 필요치 않고
도도하게 인생을 살아 가면서 만족을 갖을 수 있는 자존에 관련된
인문학은 바로 나중에 관해서 이야기 하는 학문이다.
지금 세상에서 필요한 책은 인문학에 관련된 것들이다.
디지탈 문화에서 오는 박탈된 부분을 메꾸기 위해서
우리 스스로 필요를 알게 되고 찾게 되는 지금인 것이다.
인문학이 지하철 입구에 무가지로 놓여 있어 아무나 집어들고 읽어 볼 수 있는 신문처럼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문제이지 않을 수 없다.
핸드폰의 노예가 되어 남이 만들어 준 갖가지 네모난 창속에 갖혀 있는 젊은이에게
우주보다 더 넓고 큰, 무궁무궁한 꿈과 상상력을 스스로 개척하고
그들 앞 길에 자생에서 자존으로 살아가도록 할 인문학을 말하고 싶다.
인문학 책을 읽어 내는 습관이 들도록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지하철을 탈 때마다 간절하게 다가옴은
영혼까지 빼앗겨 버리고 말것 같은 핸드폰 문화에서
젊은 세대들이 어서 떠나야 한다는 걱정에서 일까?
아니면 먼저 살아온 나의 조바심에서 일까?
오늘도 나는 지하철에서 바뀌어 가는 여러 문화를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