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6

골절된 가지에서

*골절된 가지가 길이 되어 석양 끝에 선 한 소나무를 만났습니다 피곤한 하늘보다 어둠을 먼저 가져와 눈이 새까맣다 낮 동안 갈증을 꺼내 몸을 호수 쪽으로 기울고 가지를 손 끝처럼 내어 밀고 있다 걸을 수 없는 몸은 하늘에 길을 낸다던가 아예 골절된 가지가 길이 되어 허공을 걷고 산다 욱어졌던 품 바람에 숭숭 내어 주고 이 밤을 침묵으로 서 있는 나무 아버지 굽어진 어깨 가지에서 뵈옵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3.04.29

그러니까

그러니까/곽우천 그때가 50년 전 오늘쯤 옛을 끌고 오면 어딘가 약달콤 한 게 달이는 것 같다 그 총각 밥 먹는 걸 보니 어찌 그리 입맛살 있게 깨무는지 아궁이 불 들어가는 소리가 사윗감이더라 초등 2년 13w 유리 알 속 불은 먹을 게 없어서일까 씹는 소리조차 삼킨 침묵의 밤을 뚫고 나와 초록밥 먹은 다니엘보다 더 밝은 방안이었다 대갓집 담뱃대 긴 불 뻐끔 삼킬 때 쓰던 촛불은 지친 하루 끝에 도착한 가난한 제사상 머리 구석에서 곡비 흘려 맺힌 머릿속 한 방울 쪼르르 맑게 해 주던 어미의 갈증 여름밤 풀밭에 짝놀이하던 반딧불이 천자문 앞 꽁무니에 별똥별 깜빡이를 켜고 숨 내쉬면 책상에 쌓이던 긴 문자들 통나무 불고기 구이를 훨훨 하늘에 올리는 번제 소리는 누구의 사윗감 목소리일까 어젯밤 하늘에 그림 그..

시 글 2023.03.08

손을 잡으면 놓을 때를/신경숙(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에서)

손을 잡으면 놓을 때를 잘 알아야 한다. 무심코 잡은 손을 놓는 순간을 놓치면 서먹해지고 어색해 진다. 버스에서 내리다가 학교 앞 지하도에서 올라오는 그와 마주쳤다. 인사를 한다는 것이 그의 손을 잡아버렸다. 야위고 뼈만 남은듯한 손이 내 손안에 있었다. 강인한 손뼈의 감촉, 야위었지만 그의 손은 거친 연장같았다. 눈으로 반가워 하며 그도 내 손은 꼭 쥐어 주었다. 바로 손은 놓았어야 했는데 손을 잡은 채 걷기 시작했다. 반가움은 사라지고 곧 침묵 속에 놓이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놓으면 될 순간을 놓치고 나니 점점 더 손이 의식되었다. 탁 내려 놓자니 어색하고 그렇다고 계속 잡고 가자니 손바닥에 땀이 밸 정도로 긴장이 되었다. 그도 마찬가지인듯 했다. 우리는 말없이 걷기만 했다. 우리는 어정쩡하게 손을 ..

나의 여행 2010.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