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9

발바닥 가운데가 왜 오목한 지 (한강 생태공원 한 바퀴)

발바닥 가운데가 왜 오목한 지 (한강 생태공원 한 바퀴) 비 그친 뒤 땅은 빨랫줄에 방금 연 옷처럼 여름을 물고 땅의 근육과 핏줄을 끌어 쥐고 있다 바닥을 딛고 선 맨발 하얀 개망초 열 송이 발끝에 피워내고 밟히지 않으려면 길을 내 주거라 숲은 하늘 닫은 오솔길에 구불구불 골목길 터 주었네 가끔은 물웅덩이 세족탕을 파 놓고 조심을 파종한다 심심했던 지 길 동생 밴 어머니 배처럼 빙 돌아서 나오게 하고 여섯 달만큼 길을 늘여놨다 까치밥 된다는 찔레꽃 씨앗 아직은 푸른, 겨울 색을 고르는 중 작년에 보았던 고라니 오줌발 옆 노루오줌꽃이 대신 피어 하늘에 선물한다 살빛 브로치를 오솔길 가로지르는 작은 뱁새들 한 방향 가는 길에도 여러 길이 있다고 이쪽저쪽 파고드는 쪽숲 어둠은 소리를 집어먹고 그림자를 훔쳐먹고..

시 글 2023.07.11

한강에 발 담구고

둘레길인지 나들길인지 길을 따라가다 보면 알몸 한강이 철철이다 이 강물 마신 지 50여 년 더위를 마시는 물길, 삼키는 숲길은 이십 리 길 맨발의 청춘 필름 한 통 길이 여섯 친구 불러 낸 통화는 둥근 지붕에 간 친구 이별 이야기 그림자를 출장 보내고 나니 섭섭함은 외출을 하고 마냥 좋아하는 발가락 언젠가 제주 출장길 따라나선 옆지기 한라산 오르던 강아지 발보다 날렵하다 평생 가족 지켜 주던 그녀도 그림자 속도가 느려지고 가끔 어둠 파는 이야기를 하곤 동굴 안으로 들어간다 발바닥 열기는 내일까지 숨통 열 개가 부채질할 거란다 한강에 담근 발이 숭어처럼 뛸 때 태양을 토해 낸 저녁 보트 하나 물길을 접는다

카테고리 없음 2023.06.28

한 이불 속 들어갈 때

한 이불 속 들어갈 때 그와 나누는 대화를 독백이라 합니다 둘이 속삭이려면 벽에 기댈 때 높이가 맞습니다 어떤 배경 이야기든, 예를 들면 아름다움 고통 지식 종교 등 그는 변색하지 않는 평등심의 소유자로 나옵니다 가끔 자전거를 타면 특별할 수 있어요 따라다니며 바퀴를 돌립니다 나는 무동력이 되는 경지를 맛보게 되지요 혹 배를 탄다면 검은 고래 한 마리 배 아래 희뜩번뜩 찰싹 붙습니다 늘고 줄임에 자유로운 길이 나와 같은 키 재기 들어도 입이 없고 보아도 전함이 없는, 먹물 찍어 산수 그려 내는 동양화가랄까 발뒤꿈 물고 사는 천성은 꼬리달린 신의 신봉자 여서일까 죽음이 영원한 거라면 순간 든 낮잠의 그림자 같이 걷고 먹고 한 이불속 들어갈 때 고스란히 한 몸의 이야기가 됩니다.

시 글 2023.05.30

내 옆에 서 주세요

내가 왜 이 글을 쓰는지 이상할 겁니다 발이 넓으면 훤히 알려지거나 알게 되는데 그렇지를 않네요 크기와 모양새가 다르고 아프리카 나라에서 왔는지 검은색 비단도 있나요 비슷해요 나를 따라다니는 달은 하늘을 고집합니다 땅에서 죽어도 발을 떼어놓질 않는 게 있습니다 눈, 코, 입, 귀 없고 걷거나 앉아있는 걸 보면 투명 인간 아닌가 만져봅니다 칼로 쳐보아도 잘린 자국 흔적 없어요 혹 영혼일까 침대 생활을 안 좋아하는지 바닥으로 누워 삽니다 신밧드 손처럼 키를 늘렸다 잡아당겼다 그러니 가만히 보며 관심이 없을 수 없지요 이걸로 스무고개 게임 끝이 아닙니다 펄펄 끓었던 용광로 속에서도 살았고 냉혈 얼음 속에도 들어가 있었습니다 태양의 눈물 속에서 땀 흘린 적도 바위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부처가 된다 했어요 묻고 ..

시 글 2023.02.18

속세

범어사 해 질 녘 범종소리가 주변 온갖 만물상 속 자기를 깨우고 법 마당 3층석탑 법의를 두르고 별 길을 찾아가나 산새들 나뭇가지에 밤을 심었다네 스님들 동안거 숨 들었을 때 손에 잡힌 경전이 자라던 키가 겨우 잠에 듭니다 범종이 알린 메아리를 이데아라 하고 맥놀림을 그림자라 한 스님이 그리했다 하오 그 많던 자아는 어디로 물러 가고 작은 스님 신었던 고무신 법당 문 앞에 눈 감고 앉아 있습니다 법 일로 사는 배고픈 하루 스님의 호흡은 배꼽을 돌아나와 해 맑은 얼굴 우주 한 켠을 헤아릴 탑이 되었다가 새가 되었습니다 평생 주저 앉은 석탑의 침묵으로 흔들리지 않으려나 처마 끝 번뇌를 깨우려는 듯 땅그랑 깨어지는 풍경소리에 잠을 깨어 텅빈 공간이 들어오는 것을 봅니다 웅어웅어~ 범종이 알리는 새벽 예불 소리..

시 글 2023.01.11

처음

땅에 다리가 있는 걸 처음 알았어 신발을 신었고 보폭도 있었다 바람이 맞서면 주춤거렸고 뒷바람이면 빨랐다 느려질 때면 날이 더웠고 빨라지기 시작하자 가을이 왔다 키를 가졌고 몸도 가지고 있었다 보폭과 속도가 나와 똑같았다 힘이 들자 천천히 걷는다 텁석 주저앉자 같이 주저앉는다 앉아서 너 저리를 떨자 땅도 그리한다 재미있음은 같은 신발을 신었다는 점이다 오른발 왼발 바꾸거나 거꾸로 신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물며 군에 갈 때도 바꿔 신지 않았다 땅에 앉아 동구라미를 그렸다 똑같은 크기로 그린다 자전의 습관인지 들여다보았다 오늘은 언덕을 올랐다 언제 왔는지 내 발 밑에 와 있다 그림자가 말한다 나하고 두 분이 똑같네요 나는 말한다 넌 날궂이 하면 숨는 버릇이 달라 같은 거리를 터벅거렸다 종일 집으로 가기 ..

시 글 2022.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