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 10

Endless 전쟁

*Endless 전쟁 다섯 살 어느 날 이사 갔던, 지금 내 고향 토방이 나지막한 늙은 호박 같던 집 재혁이가 싸움을 걸어왔다 터를 중요시하는 고양이 동네 한 바퀴 돌고 오다 영역 침범 범이라도 된 나 염탐꾼 검색의 찢어진 눈 학교에서 만나면 기를 꺾으려는 보험용이었을까 허리에 양손을 올리고 폼을 잡았다 우리 땅 한 발자국도 딛지 못하게 할 것처럼 망치로 못질한 발바닥 캥거루 달음질로 왔다 역사가 긴 동네일수록 울타리 경계를 넘은 호박은 말뚝이 박혔고 냇물 목간하는 여자아이들 팽나무에 올라 보초를 서는 일들이 행했었지 여름 달빛마저 잠을 자고 있을 때에도 팔레스틴은 이스라엘 호미 끝 같은 창을 피해 땅굴을 파고 들어가고 있었다 그건 풀들의 Endless 전쟁이었다

시 글 2023.04.30

골절된 가지에서

*골절된 가지가 길이 되어 석양 끝에 선 한 소나무를 만났습니다 피곤한 하늘보다 어둠을 먼저 가져와 눈이 새까맣다 낮 동안 갈증을 꺼내 몸을 호수 쪽으로 기울고 가지를 손 끝처럼 내어 밀고 있다 걸을 수 없는 몸은 하늘에 길을 낸다던가 아예 골절된 가지가 길이 되어 허공을 걷고 산다 욱어졌던 품 바람에 숭숭 내어 주고 이 밤을 침묵으로 서 있는 나무 아버지 굽어진 어깨 가지에서 뵈옵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3.04.29

선재길 늦바람 불어

좀 되었던 월정사 바람이 들어 본 적 없는 절 독경 소리 새어 들어와 났다 말았다 한 사찰이 끌어당길 때 이름에 목을 걸고 없는 사람 찾으러 헤매 나선 적이 자꾸 쌓였어 봄 절간은 기와불사 주문을 피해가면, 있어야 할 연을 묶지 않는 낭떠러지 흔적 하나를 떼어 버리는 어리석음에 빠질 거 같아 예정된 처사라도 되는 듯 줄 섰었지 이 일 때문이었어 바람이 그렇게 살랑거렸던 건 기와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띠 두르고 서까래 위로 올라가고서야 봄바람이 할 일 했다는 듯 차분해졌다지 길 위에 꽃이 피어 발걸음이 앞을 서고 양팔 들고 오늘 너는 자유라고 외쳐 혼자서 가는, 길 없는 길 될까 늘 서늘한 구석으로 남은 선재길 벌어진 입이 눈꼬리 마냥 찢어지고 단단한 다짐이 끌어낸 맨발 이십 리 산 길이 어이 치받고 올라..

시 글 2023.04.24

주인이 누군가요

*주인은 누구 만물 부동산엘 들렸다 하늘과 바다도 파냐고 물었다 뭐든 판다고 했다 거기에 덤으로 땅까지 드립니다 혹 사람도 팔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까 부모도 자식도 팔고 삽니다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거북하면 임대 가능합니다 파는 게 무수했다 아주 흥미로운 것도 있습니다 시간도 팔아드립니다 물건도 많습니다 말고 그럼 또 파는 게 있습니까 공기도 팔고 빛도 팔아드립니다 주인이, 아니 파는 이는 어떤 분이시나요 신인가요 모두 사람입니다 바람 마저도 오일장에 앉아 하루를 팔고 간다

카테고리 없음 2023.04.21

순식 간에 사람이 지구에서 사라진다면

이는 천지 창조 이 전부터 일이다 가설 1 누군가가 신을 만들었다 누군가는 신은 아니다 (신을 신이 만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 둘의 신을 인정하지 않았다 가설 2 누군가는 신을 다스릴 주문을 가졌다 신이 죽을 수 없게 했다 심심하는 걸 못 참게 했다 뭐든 만들 수 있게 했다 신은 자연을 만들었다 보기에 좋았다 심심했다 사람을 만들었다 하나가 심심해서 하나를 더 만들되 나무에게서 지혜를 얻는다 가지 하나를 분질러 다른 나무를 만들 듯 갈비뼈를 꺼내 다른 사람을 만들고 꽃에게서 암 수로 씨앗을 만들 듯 자식을 만들게 했다 또 하나는 수꽃 없이도 꽃이 피고 열매 맺는 나무 같이 남자 없이 아이를 낳는 기회도 주었다 병과 약을 주었다(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사람에게 능력을 주고 누리라고 했다 그 사람만이 신..

살며 생각하며 2023.04.19

중절모는이렇게 왔다

*중절모는 이렇게 왔다 들락거리는 아픔의 문턱엔 높낮이가 있었는지 무릎까지 내려와 고개 숙인 중절모 어긋났는지 불편이 맞는다 하회탈은 안면 바꿔 산다더니 양 날개 나비처럼 깃 세우고 눈썹 보일락 말락 깊숙이 청진기를 바라보는 너 인텔리, 부자 양반쯤으로 여겼는지 침 한 모금 삼켜 헤아려 받는다 쎄일된 원형 모자 하나 손주 초등 교장도 인사가 수그러지고 공손한 언어를 모자에 올려, 맞는 종교 여기나 저기나 높이 성벽이 된, 중절모엔 든 따뜻한 체온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시 글 2023.04.16

매듭들

매듭 참 짜증이다 시장 검정 비닐봉지 꽉 다문 입 풀려는 손톱 끝보다 가위로 잘라버릴까 끝까지 풀어낼까 갈등이 번데기 좋아하는 옆지기 씻고 삶고 물 빼고 소금 넣어 볶아 놓았더니 한 숟가락도, 미더워서나 감격해서나 시험 삼은 날 작은 유리그릇 두 숟갈 질러 넣었더니 안개 낀 남산 벗어나듯 맑게 개어있다 참 그렇다 손자 젖떼기 꼭지처럼 그 순간 간지러웠을까 아팠을까 울 할머니 시집 안 가겠다던 딸애 고행 여행 가던 날 아침 매듭바람 시원했을까 벌써 기다려졌을까 어미 낮 살은 중도층 꽃 매듭진 낙화 자리 목련 빨갛다 매듭은 자르지 말고 풀어야 복 들어온다 귀가 운다

시 글 2023.04.07

박쥐

매달려 본 적 있으신가요 무언가에 무게를 자유롭게 날개로만 부채질하는 구름이나 가능할까 달을 떨어지는 끝에 거꾸로 매달려 사는 새가 있다 중력을 인정한 유일한 호롱불 신념 그가 말합니다 땅바닥에 다리를 매달고, 사는 두 발 짐승 중력을 헤집고 못 빠져 나와 피곤해 진 허리 목이 긴 기린도 물마실 때 주둥이를 중력 쪽에 둔다지요 수양 버드나무 가지 들이킨 내장 거꾸로 매달린 무게에서, 가볍게 해탈 하늘하늘 바람 날개로 와 그네 태워주고 중력은 상하를 바꾸면 평편한 저울 바늘이 될까 무거운 언어를 결에 실어 가벼히 날리는 내리 뻗은 줄가지들 평생 매달려 자유를 얻는 새, 박쥐 중력을 거스른 바람처럼 날리는 치마처럼 오늘을 비행한다

시 글 2023.04.03